영어는 못 해도 Golden은 잘 불러요

흥미의 힘

by 니나맘

아직 밤 같이 깜깜한 겨울 이른 아침.

아이는 유난히 눈 뜨기 힘들어 한다.

갓 태어난 사슴 새끼처럼 비틀거리며 겨우 안방 문을 나서고도 잠이 깨지 않아 짜증이 한 바가지다.


이럴 때 특효약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 ost이다.

“Golden”의 도입부가 시작되면, 아이의 엉덩이와 어깨는 절로 리듬을 탄다. 의지와 상관없이 “I was a ghost, I was alone…” 가사를 목청껏 내뱉으며 아이는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어난다.




우리 니나는 말이 늦게 트였다. 말수가 적어 한때는 걱정도 컸다.

한글도 늦게 깨친 아이에게 영어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래도 재미있게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 학원도 보내고 영어 영상도 꾸준히 보여줬지만, 영어로 입을 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아이가 케데헌의 “Golden”은 끝내주게 따라 부른다. 그냥 후렴을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내가 잘못 따라 부르면 단어도 고쳐준다.


아이의 발달에 ‘흥미’라는 부스터가 붙으면 그 속도는 단순히 질주하는 자동차를 넘어선다.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는 로켓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이전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유초등 아이의 교육에서 ‘흥미’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래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우리 딸의 교육 목표에는 늘 ‘흥미’가 최우선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흥미는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잃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을까?




흥미의 출발점은 ‘관심’, 그리고 주의 깊은 관찰


아이가 어떤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평소 아이가 자주 언급하는 것들, 행동이 밝아지는 순간들만 주의 있게 관찰해도 금방 찾을 수 있다.


우리 딸 니나는 말을 늦게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숫자는 빨리 익혔다. 특별히 가르친 것도 아닌데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익혔다.

아이는 뭐든 숫자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양치를 해도, 샤워를 해도 숫자를 세며 자신의 속도를 측정하고 싶어했다. 사물이 여러 개 놓여 있으면 반드시 몇 개인지 세어 보려고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누가 더 위쪽에 서있고 누가 더 아래쪽에 서 있는지 꼭 한 번 언급하고 넘어갔다.


반면 감정이나 의견을 물어보면 말로 답하는 것을 싫어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묻거나 하루 일과가 어떠했는지 유치원에서 어떤 재미난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런 단계의 아이에게 외국어 학원이나 독서 학원 등을 보내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게 될지 뻔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첫 사교육으로 영어가 아닌 수학 교구 학원을 선택했다.


물론 아이의 흥미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영어에 별로 관심이 없던 아이가 어느 날 영어 표현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접한 영어 억양을 제멋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흥미를 따라,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을 수 있는 학원을 물색했고, 한동안 재미있게 영어 학원을 다녀 보기도 했다.




흥미를 이어가는 힘, 적절한 자극


적절한 난이도의 지적 자극을 주는 것은 흥미를 지속시키는 데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는 어렵지 않은 내용을 익혀 문제를 해결하는 성취 경험을 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적당히 어려운 과제로 지루함을 막는 것이다.

너무 쉬우면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게 되므로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딸이 수학 교구 학원을 다니는 동안 나는 내용이 아이에게 지나치게 어렵지 않은지 지속적으로 체크했다. 학원 정상 진도라 해도 '내 아이에게' 힘들 수 있으니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


유아 시기, 그리고 초등 저학년까지의 학습은 부모가 함께 해주어야 한다.

흥미를 잃지 않으려면 “내 아이에게 딱 맞는 난이도”를 찾는 작업이 필수다.




아는 것을 풀어내는 성취 경험의 힘


작은 성취 경험의 축적은 아이의 흥미를 붙잡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가장 쉬운 성취 경험 중 하나는 이미 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을 풀어내고 그 순간을 뽐내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이의 흥미 유지를 돕고, 나아가 자신감, 자존감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딸이 다닌 교구 학원의 경우 학기 말마다 테스트를 진행했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테스트 전 반드시 함께 아이와 복습했다. “아는 문제를 풀어내는 희열”을 아이가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테스트의 결과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익숙한 문제를 거침없이 푸는 그 경험 자체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스트 결과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결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성적이 좋아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테스트를 준비하며 복습할 때의 자세, 의지 등을 아낌없이 칭찬한다.


사실 10세 이전 아이에게 이런 형태의 테스트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칫 부모의 태도에 따라 결과 지향적인 사고가 자리잡을 수 있고, 제대로 복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되려 나쁜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이미 배운 내용을 테스트에서 풀지 못하는 경험은 아이에게 ‘나는 이걸 잘 못해’ 또는 ‘재미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배웠는데도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는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테스트 준비 과정에서 아이가 유독 괴로워한다면, 그건 신호다. 아이에게 이미 흥미가 사라진 것은 아닌지,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닌지, 학습 방식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점검해야 한다.




학원보다 오래 남는 것


우리 아이는 첫 사교육으로 수학 교구 학원을 다니며 수와 도형에 대한 흥미를 크게 확장했다. 진도가 니나에게 너무 빨라 흥미를 잃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시점에 기분 좋게 그만두었다.


가끔 어린 나이에 수학 학원을 다닌 것이 쓸모 없었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한다. 가치가 있었다.

아이가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실 학원에서 배운 내용은 금방 까먹는다. 유초등 시기 학원은 지식 축적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 아이는 ‘수학은 즐거운 것’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이 제대로 되어 있다.

그 이미지를 잘 이어 나가기만 한다면, 대성공이다.




이처럼 내가 아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이 또래 아이들은 다들 이 학원은 보내더라’ 보다는 ‘우리 아이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를 더 중시한다.

만일 우리 아이가 언어에 큰 관심을 보였더라면 아이는 교구 학원이 아닌 영어 학원 먼저 다녔을 거다.


좋은 머리, 부모의 자본력, 풍부한 사교육 경험 등 학습에 있어 실패할 수 없는 조건을 갖추고도 공부를 즐기지 못해 길을 잃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유초등 교육의 중심축은 ‘흥미’에 맞춰져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긴 학습 여정을 지켜줄 에너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