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안가도, 공부는 잘했으면 좋겠다

by 니나맘

아이는 자란다.

봄볕 한 줌보다 작던 발이 어느새 내 보폭에 맞추고 있다.

아이의 빠른 성장 앞에서 문득 생각한다. ‘혹시 내가, 아이의 속도가 아닌 불안한 사회의 잣대로 교육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7세 고시’를 다룬 탐사 프로그램을 보았다. 우리나라 사교육 과열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심지어 초등학생도 아닌 7세, 4세 유아라는 점에서 유난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시(考試)’라는 이름 답게, 프로그램 속 유아들은 대학 입시 못지 않은 학습을 수행하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유아기 학습 기준을 대학 입시에 맞추는 것이 맞나?


내 주변에도 아이 3세, 4세 때부터 수많은 사교육으로 ‘앉혀서 공부시키기' 시작하는 부모들이 꽤 많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이렇게 말한다.

“학교 들어가서 좀 편하게 공부 하라고요”

유아 때 영어를 좀 시켜서 마스터를 해 두면 고등학교 들어가서 다른 과목 공부할 시간이 벌어지니, 결국 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논리다.


그런데 일단, 공부에 마스터가 어디 있는가.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인데.


게다가 유아 시기 사교육과 대학 입시 공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다. 공부 좀 해봤다는 사람은 알 것이다. 모든 종류의 시험은 서로 다른 학습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4세 아이가 파닉스를 완벽하게 해낸다고 해서, 그것이 대학 입시와 얼마나 상관이 있겠는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유아들에게 대학 입시를 전제로 한 학습은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 미취학 아이의 교육에서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첫째도 흥미, 둘째도 흥미여야 한다.

유아 교육은 절대적으로 아이의 관심에 기반해야 한다. 아이의 관심사가 향하는 곳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확장 시킬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아이의 흥미는 불씨와 같다. 잘 지키면 큰 불꽃이 되지만, 한번 꺼지면 다시 붙이기 위해 훨씬 더 큰 에너지가 든다.


입시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 말을 들어보니, 부모가 짜준 커리큘럼과 촘촘한 사교육 스케쥴로 이른바 우리나라 ‘TOP 대학’을 보내는 것이 가능은 하단다.

하지만 자기 주도적 목표 설정과 학습 방법을 체득하지 못한 채 서울대에 간다 한들, 그 아이가 얼마나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대학 강의 스케쥴도 엄마에게 물어 짜고, 졸업 후 직업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가 이후 60년이 넘는 긴 세월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서울대는 안 가도 공부는 잘했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능을 잘 보는 스킬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종합적이고 섬세한 힘이 필요하다.


1.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는 능력

2. 목표 달성을 위한 효율적 과정과 전략을 파악하는 능력

– 예를 들어 토익 시험을 목표로 하면서 원어민 스피킹 과외를 받는 것은 효율적인 전략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3. 시간, 체력, 학습량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능력

4. 계획을 지켜내는 인내심과 집중력

5. 성적 정체나 체력적 한계 같은 슬럼프를 넘길 수 있는 멘탈 관리와 자기 믿음

6. 목표를 이루었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새로운 길을 선택해 도전하는 용기


학원과 엄마 치맛바람으로 이루어 낸 학벌이 이런 '공부 잘하는 힘'을 얻어내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진정한 공부는 아이가 학창시절 스스로 부딪혀서 깨지며 이겨내는 과정을 거쳐야 체득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 과정을 빠짐없이 거쳐 공부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이의 체력을 길러주는 것. 그리고 O포자가 되지 않도록, 흥미의 불씨를 계속 살려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서울대는 안 가도 공부는 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의 속도를 살피며, 나의 보폭을 조정한다.

이번엔, 내가 아이에 맞추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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