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죠서 감사합니다

by 니나맘

7살이 된 딸아이는 부쩍 글쓰기가 자유로워졌다. 친구들과 짧은 메모도 주고받고, 색종이를 작게 잘라 붙여 제 딴에 무척이나 정성을 들인 책을 제작(?)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유치원 놀이 시간에 만들었다며 편지를 한 장 가져왔다. 엄마에게 주는 편지란다.


어버이날도 아니고, 내 생일도 아니었다. 엄마에게 편지 쓸 생각을 했다는 것이 참 기특하여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유치원 행사도 아니었고, 선생님이 시켜서도 아니었단다. 정말 '그냥' 썼다고 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 엄마 사랑해, 나를 낳아죠서 감사합니다, 저를 잘 돌봐좋서 감사합니다. 니나가 엄마에게


아아.

세상의 온갖 귀여운 것들을 다 가져다 뭉쳐 놓아도 이 편지의 귀여움을 이길 수 없다.


색종이에 큼직하게 써 내려간, 고작 다섯 줄짜리 편지. 이상하게 마음이 시큰해졌다. 엄마 좋아하는 색에 맞춰 편지 봉투까지 정성스레 만들어 넣은 세심한 마음 때문일까. 별 것도 아닌 보통의 날에 준비없이 맞이한 서프라이즈 편지라 그랬을까.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니, 낳아줘서 고맙다는 그 한마디가 내 심장을 쿵 하고 때렸던 것 같다.




니나는 시험관 베이비이다. 결혼한 지 6년만에, 난임 병원을 드나든 지 2년만에, 인공 수정 2회와 시험관 시술 4회만에 어렵게 얻은 소중한 아이이다.


결혼하고 처음 몇 년은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자연 임신만 고집했다. 그런 내가 2년 동안 의학의 힘을 빌려 임신에 애를 쓰면서, 마음 한 켠에 늘 이런 이상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 혹시, 운명에 없는 아이를 억지로 만들고 있는 건가.


거듭되는 시술 실패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임신 포기를 선언했던 그 날, 난임 병원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간곡하게 이야기했다. 정말 마지막 한 번만 해보자고. 자궁내막증 시술에, 각종 난임 검사에, 일곱 여덟 종류의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하고, 운동하며 만든 이른바 '임신 적합형 몸'이 아깝다며 말이다.


그래, 그동안 들었던 시간과 노력 생각해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한 시험관 시술이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마주한 두 줄의 임신 테스트기. 그렇게 찾아온 천사가 바로 지금의 딸 아이이다.




이 세상에 자신의 의지대로 태어나고 부모를 선택하는 아기가 어디 있겠는가. 만은, 저절로 찾아온 아이가 아니라 다섯 번이 넘는 난임 시술 끝에 만나게 된 딸에게 이상한 미안함을 늘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나를 낳아 세상 빛을 보게 해 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회를 살아온 세대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세상은 마냥 즐거운 놀이공원나 워터파크 같은 곳이 아니었다.

태어나 살게 된 것 만으로도 재미 있고 즐거운 곳이 아니다. 견디고 버텨야 할 힘든 일도 많다. 살면서 느낄 행복과 불행의 비중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행운과 불운의 양도 상당히 불공평하게 배정된다. 행복의 이유가 명예이든, 돈이든 그 종류와 관계없이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더 불편하고 지리한 과정이 있을 수밖에 없기도 한다.



혹시나 내가 아이를 억지로 세상 풍파 속으로 끌어온 것이 아닐지.


이것이 과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여전한 미안함이 존재했다.


사실 그 덕에 아이 키우며 마음 컨트롤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내가 아이를 굳이 굳이 세상으로 데려왔다는 그 책임감 때문에, 갓난 애가 많이 울고 밤에 잠을 자지 않아도, 떼를 좀 써도, 발달이 좀 느리거나 말을 안 들어도 힘든 느낌 없이 키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아이가 '그냥' 적었다는 짧은 편지에 이렇게도 깊은 생각을 하다니, 아이를 낳아 키우면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는 어른들 말씀은 정말 옳다.


아이가 서툰 맞춤법으로 쓰는 글도 잠시 스쳐가는 짧은 기간의 일일 뿐일 거라 생각하니 슬프다. 아기 때의 미쉐린 팔이 금방 사라져버린 것처럼 이것도 금방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 틀린 맞춤법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비가 오는 가을 아침은

우유 냄새가 난다

젖 먹는 아가의 웃음 같은.


갓 태어난 아이의 웃음에서 태어난 요정은

아이가 믿음을 상실하는 순간 사라진다는데

내 아이의 팅커벨은 어디 숨어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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