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
나는 사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대신 초등 시절 대부분은 수영장에서 보냈다.
나는 작고 마른 아이였다. 키는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작았고 잔병 치레도 많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수영만큼은 꾸준히 시키려고 노력하셨다. 아무리 내가 싫다 해도 수영 수업은 절대 빠지지 않고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같이 수영을 다닌 덕에 2학년 부터는 크고 작은 수영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4학년 무렵에는 전국 소년체전에 출전했다.
겨울 방학 추운 날씨에 중고등 선수 언니 오빠들과 함께 훈련 받느라 힘들어서 울었던 기억도 난다.
질리고 힘들어서 수영 안 간다고 버틴 적도 있었지만, 엄마는 아예 관둘 각오 없다면 빠질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단호했다.
수영 대회에 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영복을 입은 맨 살에 닿는 차가운 공기. 추워서인지 긴장해서인지 모르게 달달 떨리는 몸.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그 느낌. 그건 ‘기억’이라고 하기 힘들다. 몸에 남은 ‘감각’에 가깝다.
수영 대회에 나가 내 출전 순서를 기다리던 기억 또한 생생하다. 행사를 준비하는 대회 측 진행 요원들은 늘 나에게 비슷한 대사를 했다.
“2학년 맞아요?” “3학년 맞아요?” “4학년 맞아요?”
몸집이 또래보다 워낙 작은 탓에 한 학년, 혹은 두 학년 아래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출전 순서를 기다리다 내 순서가 돌아오면 경기장으로 입장한다. 배정된 레인 앞에 서면, 심판 선생님이 스피커로 1레인부터 이름을 호명한다. “3레인, 이OO” 내 이름이 호명되면 나는 늠름하게 – 마치 프로 선수인 마냥 – 한 손을 번쩍 들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이 때 자연스럽게 손목 발목을 돌리거나 콩콩 뛰며 몸을 풀어주면 한층 더 멋있어 보인다.
나는 배영과 자유형이 주 종목이었다. 자유형 경기라면 출발대 위로 올라가고, 배영 경기라면 수영장 가장자리에 살짝 쪼그리고 앉아 가슴팍에 물을 살짝 묻힌 뒤, 물 속으로 뛰어들어 출발대의 손잡이를 잡는다.
모든 선수가 준비가 되면 심판이 엄숙하게 선언한다.
“레뒤-“
자유형이면 출발대 끝에 발가락을 끼우고 몸을 숙여 준비 자세를 취하고, 배영이면 출발대 손잡이를 잡은 채 몸을 출발대 쪽으로 바싹 당겨 준비 자세를 취한다.
바로 이 순간이다. 그 후 약 30년 인생을 책임져 온 기억.
삶의 짐과 온갖 도전과 실패로 무한히 무거워지는 지붕 같은 인생을 지지하는 굵디 굵은 기둥이 되는 경험.
심판이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울리기 바로 직전의 감각.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이 공기마저 팽팽해진다.
그리고
“탕”
마치 파블로프의 종소리에 움직이는 강아지처럼, 출발 신호에 몸이 튕겨 나간다.
한편으로는 멍하지만 사실 온 몸의 감각이 “물 속에서 빠른 스피드로 질주할 것”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기계적으로 집중된다. 이 순간에는 내 컨디션도, 긴장감도, 사람들의 시선도, 어떤 것도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냥 명령어가 입력된 기계처럼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직감할 수 있다. 만일 내가 평소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 상황에 이 순간을 맞이했다면 내 몸과 머리와 마음은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몸의 움직임은 의식적이지도, 노력을 요하지도 않는다. 높은 곳에서 던져진 공이 포물선을 그리듯, 내 몸도 알아서 움직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물 속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내 몸은 가볍다. 마치 공중에 놓여진 한지마냥 가볍다. 내 의지나 의식과 무관하게 팔도 다리도 움직이고 있다.
내 시야에서 옆 레인 선수들이 대략 보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제쳐진다. 내가 마치 달리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다. 몸이 너무 가볍고 빨라서, 피니쉬 라인 터치 패드에 생각보다 빨리 도달해버리는 바람에 머리를 세게 꽝 부딪힌다. 그리고 전광판을 확인할 때의 환희, 좌절의 기억.
모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많은 수영 대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결과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딜 가나 또래보다 작은 체구이기에 운동으로 뭔가 해낼 수 있을거라 누구도 예상못했던 나는, 꾸준한 연습으로 타고난 결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체득하였다.
수영 대회에서 겪은 거대한 긴장 상황, 평소 준비한 정도에 비례하여 긴장 상황에 개의치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몸과 머리, 그리고 신체적 불리함을 넘어서 얻어낸 수상 경험. 어릴 때 수영을 하며 얻은 성공 경험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 이미 고도로 긴장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겪으며, 나는 일생동안 겪을 긴장을 다 겪은 것 같았다. 반복의 경험은 습관이 된다. 저런 경험이 어릴 때부터 차고 넘쳤으니, 청소년 시기 시험 치는 것이 힘들 것이 없었다. 긴장을 어떻게 가라앉히고 다루는지 체득하여 알고 있으니 말이다.
긴장 상황에 마인드 컨트롤 할 능력을 얻은 것이다. 준비 과정이 완벽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수능 시험 전날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했을 때에도, 대학 면접을 갈 때에도, 회사 입사 면접을 갈 때에도 지나친 걱정이나 마음의 동요 없이 해낼 수 있었다.
또한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했던 경험 덕분에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 내가 가진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실행력, 추진력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 접한 한 책에서 나는 내가 학원이 아닌 수영장에서 배운 그 감각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자녀가 완성을 경험하게 하라.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어떤 일에 끝까지 참여한 경험은 그릿을 요구하는 동시에 길러준다.
힘든 일을 끝까지 해내면서 확실하게 교훈을 얻으며, 그 교훈은 다른 영역으로 옮겨 간다.
- <그릿>, 앤절라 더크워스
나 역시 인생 전반을 꿰뚫는 중요한 에너지가 모두 어릴 때 이 완성 경험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 삶을 통틀어 첫 성공 경험, 그리고 가장 영향력이 지대하고 큰 성공 경험은 바로 어릴 적 수영을 했던 경험이다.
어릴 적 성공 경험은 중요하다. 그것이 운동이 되었든, 공부나 미술이나 음악이 되었든 말이다. 거대한 긴장 상황에 놓여보는 경험, 그리고 과정에 꾸준한 노력이 더해진다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오는 것이라는 감각.
나는 능력을 평가받아야 하는 숱한 순간에, 긴장 때문에 가진 것의 일부만 내보이는 실수를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중고등 시절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도 목표를 이뤄내고, 꿈꾸던 대학 입학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지능이나 공부 머리가 아니라 수영을 하며 체득한 강점들 덕분이었다.
내 아이에게도 이런 성공 경험을 주고 싶다.
재능이나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어떤 파도 앞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뛰어들 수 있는 ‘몸의 기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