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by 이정빈

우리는 왜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이 질문은 거창한 철학적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보통의 장면에서 시작된다.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늦을 때 괜히 마음이 불안해지고, 내가 낸 의견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을 때 이상한 기분이 밀려온다. 시험 점수, 평가, 좋아요 숫자, 고개를 끄덕이는 표정 하나까지—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반응을 살피고, 기다리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 타인의 인정을 통해 공동체 안에 자리 잡으려는 본능이라는 설명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단순히 “함께 살아남기 위한 전략”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결과로만 나를 증명하려 했던 시기가 있었다. 성과가 좋을 때는 당당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말수가 줄었다. 그때 깨달은 건, 내가 진짜로 두려워했던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긍정해주지 않는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잘해도 불안했고, 못하면 더 불안했다. 인정이 목표가 된 순간, 마음은 좀처럼 쉬지 못했다.


비슷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보았다. 항상 밝고 능숙해 보이던 친구가 사석에서 “사실 나,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던 순간. 끊임없이 남을 도와주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잠수해 버린 이유가, 아무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허무감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인정 욕구는 유난스러운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일수록 더 깊이 앓고 있는 감정처럼 보였다.


어쩌면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존재가 확인되길’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해 준다는 건, 최소한 나를 보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잘했든 못했든, 긍정이든 부정이든, 반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이 세계에 붙잡아준다. 무반응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나를 기억하지 않고, 아무 말도 없는 상태에서는 스스로를 규정할 기준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과도하게 애쓴다. 필요 이상으로 설명하고, 웃고, 맞추고, 성과를 쌓는다. 그 과정에서 점점 ‘있는 그대로의 나’는 뒤로 밀려난다. 인정받기 쉬운 모습만 남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스스로 지워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얻은 인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잘할 때만, 쓸모 있을 때만, 기대에 부응할 때만 유지되는 인정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그러기에 ‘앞 뒤가 다른 사람’은 흔히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나 역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없애려고 애써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왜 이렇게까지 인정이 필요할까?”를 묻는 대신, “내가 나를 인정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대답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나는 나에게 꽤 인색했다. 잘한 건 당연하게 넘기고, 부족한 것만 집요하게 붙잡고 있었다. 메타인지라는 말로 포장하며,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였었다.


타인의 인정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사실 현실적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힘을 얻고, 시선 하나에 상처받는다. 다만, 인정이 전부가 되지 않게 할 수는 있다. 타인의 평가가 나를 완전히 규정하지 않도록, 그보다 먼저 스스로를 바라보는 기준을 세울 수는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그래도 나는 이 선택을 나름의 이유로 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여전히 흔들리지만, 예전처럼 무너지는 일은 줄었다. 인정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나를 끌고 다니는 힘에서, 내가 다루어야 할 감정 중 하나로 내려온 느낌이다.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인정받고 싶어 할 것이다. 그건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증거에 가깝다. 중요한 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마음에 전부를 맡기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의 존재를 놓치지 않는 연습. 어쩌면 성숙이란, 인정 욕구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욕구와 함께 흔들리지 않고 서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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