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질서와 혼란의 구조
나의 머릿속은 늘 바쁘다.
그들의 머릿속은 더 바쁘다.
책상 위에도, 생각 속에도
‘나중에 해야 할 일’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할 일은 많고, 집중은 짧고,
대화는 자주 끊기며, 생각은 늘 복잡하다.
“기억력이 나빠서 그래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작업 기억력이라는 조그만 책상이 이미 꽉 찬 상태다.
우리는 그 위에
인생 전체를 올려놓고 버티는 중이다.
작업 기억력(Working Memory)은
1974년, 심리학자 배들리와 히치가 처음 정의한 개념이다.
“작업 기억은 정보를 잠시 저장하고 조작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기억력’과는 다르다.
기억은 저장의 능력이고,
작업 기억은 처리의 능력이다.
우리가 머릿속에서
‘오늘 일정 +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 + 점심 메뉴 + 갑자기 떠오른 후회’ 등의
뇌의 책상 위에 쌓인 과제들을 동시에 붙잡고,
책상 위를 복잡하게 쓰면서
엎지르고, 쏟고, 잊는다.
작업 기억력은 이렇게 작동한다
담당 부위: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지속 시간: 약 10~20초
저장 용량: 7±2개의 정보(밀러의 법칙)
특징: 감정 스트레스, 피로, 스마트폰 알림에 매우 취약
즉,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하려는 순간, 뇌의 책상은 뒤집힌다.”
작업 기억은 ‘주의력’이라는 연료로 작동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주의는
스마트폰 알림, 메신저 대화, 미완의 일들 속에 찢겨나간다.
그 결과,
해야 할 일의 ‘순서’와 ‘맥락’이 무너진다.
그들은 말한다.
“할 게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사실은, 주의의 위치를 잃은 것이다.
주의가 없는 기억은,
파일명이 없는 폴더와 같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단순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빠른 전환’이 반복될 뿐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대가는,
집중력의 산화(oxidation of attention)다.
주의가 탈수되고, 생각이 증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정도쯤이야.” 하며
뇌의 현실을 무시한 채 과로를 시킨다.
결국 피로해지는 건
몸이 아니라 생각이다.
우리의 뇌가 과열되는 일상 패턴
알림음 하나로 대화의 흐름이 깨질 때
할 일 목록을 기억에만 의존할 때
“지금 생각난 김에”라며 일정을 덮을 때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로 두지 못할 때
→ 이때 뇌는 ‘순서의 혼란’을 겪는다.
→ 뇌의 혼란은 결국 관계의 피로로 이어진다.
질서 있는 뇌는
질서 있는 하루를 만든다.
여기서 질서란 완벽함이 아니라,
나의 인지 자원을 아끼는 습관이다.
할 일을 적는 건 게으름의 징후가 아니라,
뇌를 존중하는 태도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짜 기억해야 할 것이 또렷해진다.
“기억은 똑똑함의 증거가 아니라,
질서의 결과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작은 뇌를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생의 피로가 줄어든다.
뇌는 늘 말없이 우리에게 요청한다.
“책상 좀 정리해 줘.”
그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
그가 진짜 현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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