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평가의 이름들

by 래온

회사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를 움직이는 사람과, 내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 전자는 능력 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래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누군가를 움직일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까, 아니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빈칸을 메워주는 사람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능력 있다’는 평을 듣는 사람은 아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판을 뒤집지도 못하고, 회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압도할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대신 주어진 일은 끝까지 붙들고 간다. 마감은 지키고, 실수는 줄이려 애쓴다. 누군가 급하게 비운 자리를 메워야 할 때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어쩌면 나는 내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 쪽에 가까울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런 구분이 서글프기도 했다. 능력 있는 사람과 성실한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능력은 박수받고, 성실은 당연시된다. 하지만 회사를 오래 다녀보니 안다. 성실함이 없는 능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능력을 키워내는 토양은 결국 성실함이라는 것을. 매일의 반복을 견디는 힘, 사소한 일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태도, 약속을 지키는 꾸준함. 그것이 쌓여 어느 순간 사람의 무게가 된다.

또 다른 구분도 들었다. 부역자, 능력자, 조력자, 그리고 유력자. 부역자는 주어진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고, 능력자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조력자는 일을 잘하면서도 유력자가 잘되도록 돕는 사람, 유력자는 일 잘함을 기본으로 인사이트와 리더십까지 갖춘 사람이라고 했다. 그 분류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나는 스스로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내 스스로 유력자가 아님을 안다. 멀리 내다보는 시야도, 사람을 이끄는 카리스마도 없다. 그렇다고 부역자로 남고 싶지는 않다. ‘내 일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한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지향할 자리는 어쩌면 조력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일을 잘 해내는 기본기를 갖추고, 팀과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힘을 보태는 사람.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은 아니지만, 무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는 사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누군가를 단번에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뢰가 쌓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사람에게 맡기면 괜찮다”는 말을 듣는 사람. 능력이라는 단어가 화려한 기술을 의미한다면, 성실함은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태도는 쉽게 퇴색하지 않는다.

회사 생활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 버텨내는 시간의 총합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인사이트로, 누군가는 리더십으로, 또 누군가는 묵묵한 실행력으로 조직을 지탱한다. 나는 오늘도 질문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아마도 답은 거창하지 않을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처음의 마음처럼,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성실함 위에 능력이 얹히고, 능력 위에 통찰이 더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는 사람이, 내가 꿈꾸는 회사에서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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