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남은 마음의 결

by 래온

사람의 얼굴에는 시간이 스며든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나온 선택과 감정, 견뎌온 순간들이 미세한 결처럼 얹혀 간다. 나는 유독 그런 것들에 민감한 편이다. 누군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말보다 먼저 분위기를 느끼고, 눈빛이나 표정의 결에서 그 사람의 결을 짐작하곤 한다. 선한 사람인지, 계산적인 사람인지, 혹은 그저 무해하게 흘러가는 사람인지. 틀릴 때도 있겠지만, 그 감각은 대부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타인의 얼굴뿐 아니라 나의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도 궁금해졌다. 회사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도 있었고, 묻지 않았는데도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 “약해 보이진 않아. 할 말은 할 것 같아.” 그 말은 나를 정확히 짚은 것 같기도, 어딘가 모르게 내가 원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방향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을 웃으며 흘려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순해 보이고 싶다’, ‘무해한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내 진심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바랐던 것은 단순히 순해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휘둘리는 사람, 혹은 아무런 색도 없이 흐릿하게 남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타인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 삶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필요할 때는 단단하게 말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드럽게 물러날 줄 아는 사람. 그런 균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평가는 하나로 모인다. ‘바른 사람’. 그 말은 생각보다 무겁고, 또 쉽지 않다. 바르다는 것은 단순히 착하거나 순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태도, 타인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기준을 잃지 않는 중심. 나는 그런 것들이 얼굴에 남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그 흔적은 결국 드러난다. 내가 예민하게 느끼는 그 ‘분위기’ 역시 어쩌면 그런 시간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얼굴 역시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덜 고민하려 한다. 어떻게 보일지를 애써 꾸미기보다, 어떻게 살아갈지를 더 분명히 하려고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고, 동시에 나 자신을 함부로 내주지 않는 삶. 그런 시간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보고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저 사람은 바른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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