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을 두고도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 하루였다. 회사친구와 점심을 함께 먹고 커피를 사러 가던 길, 우연히 팀원과 마주쳤다.
화사로 돌아와 마주친 팀원과의 나눈 메신저는 내가 아는게 전부가 아닐수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이어진 이야기 속에서 들은 회사 친구에 대한 평가는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꽤 달랐다.
내가 알던 그는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드러내기보다는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쪽에 가까웠다.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것이 밖으로 강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윗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구나’ 정도로 이해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팀원의 입을 통해 전해진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일을 아주 잘하고, 발표 자료를 특히 잘 만든다는 이야기. 그래서 좋은 본부로 데리고 갔고 원하는 부서는 갈수있다는 이야기. 그저 조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친구에게 ‘능력으로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는 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분명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내가 모르는 그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보아온 모습이 그의 전부라고,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단정 지어왔기 때문이었을까.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만큼, 그 간극은 더 크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언제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동료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능한 일꾼이며, 어떤 자리에서는 의외로 적극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모든 모습이 모여 하나의 ‘그 사람’을 이루고 있지만, 우리는 종종 그중 일부만을 보고 전체라고 착각한다.
나 역시 그 친구를 오래 보아왔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드러난 한 단면이었을 뿐이다. 내가 함께 있는 시간, 나와 나누는 대화, 나에게 보여주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진짜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조금 실감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로도 이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누군가는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또 누군가는 세심한 사람으로, 혹은 무심하거나 차가운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나의 또 다른 모습은 어딘가에서 형성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고, 동시에 타인 역시 나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 사이의 간극은 어쩌면 줄어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간극을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을 낯설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
그날 이후로 그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얼굴을 천천히 발견해가는 과정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