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창작 단편소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그 아이는 학교에 자퇴서를 낸 후
깊은 산속의 절로 들어가 버렸다.
그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 흔들고 있었다.
10년 전의 모습과 변함없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나 밝은 아이였다.
나도 애써 웃으며 화답했다.
휴대폰도 전부 다 버려서, 이제는 연락조차 할 수 없다.
그 아이를 만나려면 이 설산을 다시 올라야 한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그리울 때마다
빨간 공중전화박스에서 몇 번이고 전화기를 들었나 놨다 하며
쏟아지는 눈과 함께 눈물을 흘려보냈다.
처음 너와 만나 탯줄이 끊어질 땐 앞도 보지 못하는 네가 울었었지.
대신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어.
하지만 이제는 너 스스로가 탯줄을 끊어
엄마를 울게 만드네, 그렇지?
웃는 네 모습을 보며 생각했어.
지금의 너는 행복한 거지?
엄마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성인이 되어 출가하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후련하고도 아련하다는데.
나는 채 성인이 되지도 못한 너를 떠나보내며
왜 이렇게까지 미련한지 모르겠어.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엄마인지 모르겠어, 신아야.
그렇게 영영 사라졌다.
나는 3년간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수능날이란다.
학교 앞에는 부모들이 애타는 눈초리로 늘어서 있었다.
검은 롱패딩을 입고 입김을 불며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눈물이 났다.
어쩐지,
눈물이 났다.
살아 있는 거지?
잘 살아 있는 거지?
그거면 됐어.
그날도 눈이 왔다.
빨간 신호등, 횡단보도 너머 그리운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애는 빨간색 떡볶이 코트를 입고 눈이 부시게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애는 얼굴이 창백했다.
눈을 너무 많이 맞아 그런 거겠지.
많이 춥겠다, 우리 딸.
그 애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은 돈을 벌어 지구 반대편 남극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 아이는 그렇게라도 이 별을 이해해 보려고 한 것이다.
아이는 또래의 아이들이 머리를 싸매고 학교에서 수능을 치르는 동안
높은 산을 오르고 또 올랐더란다.
숨이 팍 차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오르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선 산 꼭대기에 오른 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고.
다음에는 같이 가자. 엄마는 요즘 어떻게 지내? 잘 있지?
이런 형식적인 말은 당연히 없었다. 그 애는 나를 원망하니까. 나도 잘 알고 있어서 감히 바랄 수조차 없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그저 살아만 있는 것.
저 학교 앞에 늘어선 부모들은 자식에게 무얼 바랄까.
성취? 보답?
그런 것들은 나에게는 사치였다.
그러고서는 그 애는 홀연히 또다시 여행을 떠났다. 아주 자유롭게.
너는 바람처럼 이 세상을 누비며 흘러가는 존재인데
나는 늘 물처럼 고여 깊은 곳으로 점점 파묻히기만 한다.
보고 싶다는 말이, 엄마와 함께 있어 달라는 말이 너에게 짐이 될까 봐
감히 그런 말을 할 수조차 없다.
아이는 외계인이다.
다른 별에서 이 별을 여행하러 온 외계인.
그러는 동안, 너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나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늘 자신이 이상한 존재라고 했다.
남들과 달라서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늘 이렇게 답했다.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이 세상이 이상한 것일 뿐이야.”
도대체 누가 이상한 걸까?
학교도 가지 않고 수능도 보지 않지만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고 애썼던 우리 딸.
그런 아이의 삶이 이상한 삶이라며
모진 비난과 질책을 했던 선생들, 친구들, ….
그리고, 나…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이상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어.
잘못되었다고 규정하는 인간들만 있을 뿐이야.
그러니, 바라건대 아이야.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주렴.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너만큼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렴.
있지, 아가.
엄마는 네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게 엄마의 꿈이야.
… 그러고도,
그렇게 네 꿈을 이루고 나면
그때에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도
네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과분한 부탁임을 알지만…
이렇게 말해도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있지, 아이야.
엄마는 아직도 가끔씩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얘기해 주던
네 모습이 선해서.
그게 너무 그리워서.
과거를 헤매며 살고 있거든…
미안해. 이런 부탁을 해서.
***
“… 연수 씨. 많이 힘드시겠어요. 힘내요.”
“맞아요, 연수 씨 잘못이 아니에요.”
문득 몇 개월 만에 본 직장 동료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들의 말투는 지나칠 만큼 조심스러웠다.
“… 뭐가요?”
“…네?”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 순간 나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따님… 일 말이에요.”
“연수 씨, 괜찮은 거죠?”
“……”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턱이 바들바들 옅게 떨리고 있었다.
눈물이 펑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사실은,
사실은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더 이상은
너를
볼 수 없다는 걸.
그냥 그 애는 외계인이라서
이 별을 여행하다가
자신이 살던 별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우리는 이별한 게 아니라고
너는 나를 떠난 게 아니라고
내가,
너를 지키지 못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