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고마웠던 사람
지난달 시아버지 기일에 시댁 형제자매들이 산청호국원에 모두 모였다. 주차장에서 막내 동서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형님, 제가 김장했는데 김치 좀 드셔 보세요."
막내 동서는 커다란 김치통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지인이 직접 기른 배추와 정성껏 만든 양념으로 담갔다며.
나는 몇 년 전부터 김장을 하지 않는다.
식구도 많지 않고 조금씩 사 먹는 편이 마음도 몸도 편해졌다.
사실은 시어머니가 계실 때 김장을 너무 많이 해 이미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퇴근해 집에 오면 베란다에 배추 백 포기가 산처럼 쌓여 있곤 했다.
"우리 집 김치가 제일 맛있다"는 시누이들 말에, 만들어 나눠 주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그 일들은 모두 함께 사는 며느리인 내 몫이었다.
내게는 마음이 잘 통하는 동서가 있다.
나보다 열두 살이나 어리지만, 우리는 나이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친구처럼, 때로는 자매처럼 지낸다.
시어머니의 폭력성 중증 치매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남편도 시동생도 시누이들도 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 정도는 다 겪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모시고 사는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숨이 막혔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준 사람이 막내 동서였다.
나는 자주 동서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 안에 쌓인 울분을 쏟아내면 동서는 전화기 너머에서 함께 울어 주었다.
나도 울고, 동서도 울고.
그렇게 서로의 울음을 받아 주며 우리는 그 시간을 견뎌냈다.
가끔 나는 말한다.
"내게 막내 동서 같은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라고.
아마 동서가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 냈을까 싶다.
남남이던 우리가 한 집안의 동서지간으로 만난 인연.
세상에 우리 막내 동서 같은 사람 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딜 가든, 어떤 모임에 가든 동서 자랑을 한다.
김치는 언젠가 다 먹고 없어지겠지만, 그 김치가 건네준 마음만은 오래도록 내 안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