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사는 하루

일상

by 양정회

지난해 늦가을, 모처럼 남편과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단풍이 사라지기 전에 콧바람이라도 쐬자며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하동 금오산이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춥지 않은 날씨다. 딱 소풍 가기 좋은 날이었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다 진교로 빠졌다. 예전에 하동에서 근무할 때, 진주에서 버스를 타면 경유하던 곳이다. 그때의 기억과 달리, 지금의 진교는 많이 달라져 처음 와 보는 곳처럼 낯설었다.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추수를 끝낸 논은 텅 비어 고요했다. 가을 하늘의 구름은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달콤해 보였다.


언젠가 금오산 케이블카를 타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오늘 그 길에 올랐다.

금오산은 해발 849미터. 하동군의 진교면과 금남면에 걸쳐 있다. 생각보다 제법 높은 산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20분 정도 걸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가을 햇살이 바다 위에 부서져 눈이 부셨다. 멀리 지리산 능선도 보이고 전라도 광양만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시야가 트이니 마음도 함께 열렸다.


정상에는 집라인, 스카이워크, 산책 코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집라인을 타는 젊은이들을 구경했다. 출발과 동시에 괴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편은 타보자고 했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했다.


우리는 전망대 아래 산책로를 걸었다. 가을의 끝자락, 한산한 산길. 가슴이 탁 트이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산책로 중간에 놓인 흔들의자에 나란히 앉아 한참을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신선한 공기와 낙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저 멀리 섬진강과 하동읍이 보였다.


첫 발령을 받았던 그곳. 그 시절의 나, 교단에 서 있던 젊은 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여전히 넉넉했다.


오늘, 가을 소풍 오기 참 잘했다.

일상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삶은 금세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하듯 하루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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