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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저 Oct 22. 2023

3. 피눈물

피눈물

피눈물      

    

"빡" 그 애가 나의 뺨을 때렸다. 소중하고 애지중지 여기던 나의 베프가 날 때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나한테 대체 왜 이러니? 난 너에게 잘해 줬는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핑핑 맴돌았다. 눈앞에서 번개가 친 느낌이었다. 머리가 아득해져 오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감정들이 섞인 소용돌이가 날 조여 왔다. **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는 천사였다. 예쁘고 착한, 완벽한 친구였다. 얼굴만 봐도 사랑스러운 **. 죽을 때까지 친하게 지낼 줄 알았다. 쉬는 시간마다 **에게 달려가 같이 놀았고, **없는 학교생활을 상상할 수 없었다. **에게 친구로서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내가 언제나 **의 말을 잘 들어 주고, **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는 꼭 해 주니 **는 점점 날 무시하기 시작했다. 날 때리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고 했다. **는 스스로 천사가 아닌, 어둠의 동굴에 사는 끔찍하고 파렴치한 악마라는 것을 서서히 드러냈다.      


 **는 내 다리와 팔을 계속 때렸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당당하게 때렸다.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일과가 날 패는 것이었다. 선생님께는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께 말하면 **가 떠날까 봐 무서웠다. 선생님께 말하면 우리 사이가 서먹해질 것 같았다.  반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가 날 때린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자꾸 회피했다. '그래도 **에게 좋은 점은 있으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을 어영부영 덮었다.  **와 노는 행복과 **가 날 때릴 때의 불편함이 날 혼란의 감옥에 가두었다. **가 과연 좋은 친구인지, 날 패는 악마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와 같이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쩍' 하는 느낌이 들고 내 몸이 휘청거렸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가 내 머리를 때린 것이었다. '대체 왜 머리를 때린 거야?'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온갖 생각들이 나를 미로에 처넣었다. 왜 때렸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에게 "학교폭력이 될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는 "아 알았어어어~" 라고 가볍게, 대충 대답했다. '너처럼 만만한 애가 하는 말은 신경 쓸 필요도 없어!'라는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나를 교실에 굴러다니는 먼지보다 못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 드러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 날 때리는 것이 그냥 무덤덤한 일상이 돼 버렸다.      


  **에게 맞으면서,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는 어느 날, **가 내 뺨을 때린 것이었다.      

 이런 생활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랑 같이 놀면 좋았지만 뺨과 머리를 때린 아이니 베프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놀 때는 즐거웠던 친구라 때려도 참고 받아주었다. 하지만 더 가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 학교폭력 신고를 했다. 처음 신고하고 나서는 너무 힘들었다. 아무도 놀 사람 없이 혼자서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는 것은 정말 외로웠다. 육체는 학교에 있지만, 영혼은 쓸쓸하게 죽어 있었다.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가 이런 기분일까? 공허한 우주에서 다른 아이들은 다 지구에 있는데 나만 블랙홀에 있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다. 바로 홀로 살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맞고 있는 것보다는 혼자 질기게 살아남는 게 훨씬 좋았다. 내가 왜 이게 무서워 ** 같은 애랑 친해졌을까? 홀로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가 내 옆으로 지나갔다. 찔리는 표정,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한 얼굴로 다른 친구들과 낄낄거리면서. '야, 이 못된 놈아. 넌 아직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지? 난 인형이 아냐. 네 감정과 짜증을 다 받아주고, 마음껏 때릴 수 있는 감정 없는 인형이 아니라고. 언젠가.. 다시 만나면 보란 듯이 네 뺨을 휘갈겨 줄게. 네가 나에게 저지른 미친 짓거리들, 다 똑같이 해 줄게. 네 얼굴에서 피눈물이 철철 흐르도록 만들고 말 거야.'






나래는 문예창작 영재로 선정되어 글을 씁니다.  영재원에서는 1년 동안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연말에 책으로 출간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이 글은 영재원 수업을 받는 나래가 쓴 글입니다.  애써 묻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절절히 쓴 글 앞에서 저는 망연자실했습니다.  다른 재미있는 글을 써보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들을 막 내던지며 이 중에서 하나 골라보면 어떠냐고 회유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꼭 이 글을 써야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이제부터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주변 사람들 누구에게도 못했던 이야기,  나의 엄마와 아빠에게도 못했던 이야기.  선생님은 선생님이셨으니까, 학생의 마음도, 학부모의 마음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더욱이 항상 제 편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주셨으니,  늘 제 말에 귀 기울려 주셨으니,  마음 놓고 눈물이 나오면 나오는대로, 욕 하고 싶으면 쌍욕을 날리며 이야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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