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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May 12. 2022

김이사의 부동산 월드 7 - 허무한 죽음

 

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한 동안 꿀맛 같은 휴식 기간을 보낸 후 나는 다시 일을 찾아다녔다.

 

일을 찾아다닌 지 얼마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재취직에 성공했다. (내 자랑 같지만 처녀 때에도 난 취직 운이 좋았다. 아마도 내 눈빛에서 일에 대한 열망이 뿜어져 나오나 보다.)

 

외국 회사 같은 분위기의 부동산.

매일 굿모닝! 인사를 받으며, 10시 출근에 5시 퇴근.

근사한 분위기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구석에서 세상 바쁘게 숨 막히게 일하다가 여유롭고도 고차원적인 분위기의 사무실로 옮기니 적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탕비실에 늘 비스킷과 커피가 내려져 있었으며, 오너는 국제 회계사 및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 왜 부동산을 차렸을까?’

 

저 정도면 다른 일도 너끈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자신만의 원대한 꿈이 있겠지 하고 넘어갔다.

 

오너는 이 직업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점심 못 먹는 중개인들은 다 여기로 출근 도장 찍는듯했으며, 그런 사람들 말을 다 경청해주는 신사였다. 말도 크게 하면 안 되는 분위기였고, 토요일엔 1시 퇴근인데 주로 12시까지 회의를 한다.

 

주말 보고 타임이라고나 할까? 내가 알던 세상과 너무나 동떨어져서 업무가 헷갈릴 정도였다.

 

나는 한가한데 내 주변에 노인급 직원들은 일찍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정말 바쁘게 자료 정리를 해댄다.

 

문제는 365일 자료만 정리하는 데 있었다.

 

주로 대기업 퇴직자들이 많았는데, 자료 정리는 탁월하게 잘하고 있었으나 정작 계약서에 도장 찍는 우아한 모습은 보질 못했다.

 

그냥 한 달 점심값 10만 원 받는 걸로 근처 저렴한 식권 사서 점심을 때우고 오후엔 탕비실 과자로 허기를 채우는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벌이 못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틈틈이 용돈을 찔러주는 오너... 물론 그 사람도 치명적인 단점은 있었다.

 

그 사람은 꼭 ‘오너’ 여만 했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끝까지 듣는 법이 없었다.

늘 “됐고요!”로 말막음을 일삼았으니 말 다했지 않은가.

 

그래도 난 그 오너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의 말 잘라 버리는 것 빼곤 꽤 성품도 괜찮았고 지적인 사람이니까.

 

더군다나 그의 와이프가 암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그러기에 주말엔 늘 와이프랑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동산 일이란 게 의심, 또 의심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재산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 항상 경계하고 의심쩍은 일이 있으면 우물쭈물하면 안 된다.

 

경험 부족에 계약에 목말라하던 이들은 물불을 안 가리고 계약하는 통에 가끔 사고가 터지곤 한다.

 

한동안 전세사기가 난리를 치고 있었는데...

 

월세를 얻어서 전세를 놓는 사기가 유행하고 있던 차, 우리 사무실에서도 그런 일을 당한 것이었다.

 

중개 보험을 가입했지만, 사기당한 사람에게 보험회사에서 선지급하고, 이후 부동산이 물어내야 하는 체계였다.

 

말이 보험이지, 일반적인 보험과는 맥락이 좀 틀린듯하다. 사고 친 직원은 잠적했고..

모든 건 오너가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런 일이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자 일부 부동산에선 아예

 

전세 자체를 취급하지 않기도 했다.

난 지금도 중개비 아끼려고 전세를 직거래하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

 

가끔 용기가 넘쳐서 그런지, 순수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저 인터넷만 보고 직거래하는 젊은이들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여하튼, 이런저런 상황에 처한 오너는 일 년 후, 모든 일을 청산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싫어져서 인지 혼자 작은 사무실을 얻어 운영한다는 소리만 들었다.

그리고 꽤 잘한다는 소문과 함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오너가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의 나이 53세쯤 되었었다)

 

성실한 남편이 외박을 하자 아내가 지인에게 확인을 부탁했는데..

사무실에 가보니 앉은 상태에서 숨이 멈춰있었다 했다. 그 암투병 부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겠지.

 

기막히고 코 막힐 일이지,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른다더니

이런 게 ‘인생무상’이라는 건가 싶었다.

 

수없이 많이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던 사람이

갈 때는 그 누구도 옆에 두지 못하고 쓸쓸히 이승을 등졌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라고 했던 말처럼.

언젠가 죽음을 앞둔 연로한 노인에게 그동안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는 거, 지나와 돌이켜보면 세상 제일 필요 없는 게 걱정이란 거였다 “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제는 좀 적당히 걱정하고 살자.

산 정상에서 아니 남산 꼭대기에서라도 내려다보면 얼마나 우리는 좁은 세상을 보고 사는지 느낄 수 있듯이

 

가끔 우리는 삶을 멀리서 내려다보듯 보면서 평안함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페이스북 같은 곳에 마치 살아있는 듯이 사진이 걸려있는 거 보면 왠지 기분이 묘하다.

죽어서도 저렇게 떠다니게 내버려 두는 사이트가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무쪼록

좋은 곳에서 편안하시길...

 

 

2022.04.18 드레스룸 귀한 나의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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