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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당아욱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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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Apr 27. 2023

"오늘 고생했어"

'오늘만 같으시면 원이 없겠어요.'

" 오늘 고생했어!" 돌아나오는 내게 " 잘 가라, 안 나간다."하시며 중문까지 걸어나오신 아버지가 덧붙이신 말이다. 그 말소리에 어머니가 희미하게 미소를 띄신 것 같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마음이라는 시늉을 하신 것도 같았다. 이렇게 사리분별이 좋으실 때도 있건만.


오늘은 아버지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정기진료로 병원을 가시는 날이었고 그 길을 동행

하기 위해 조퇴를 했다. 병원진료 시작 전 혼잡한 대기실에서 아버지를 찾았다. 예상한 대로 아버지는 이해가 가지 않아 어머니를 힘겹게 다그치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의 표정엔 반복되었을 아버지의 소리에 피곤함이 역력했다.

아버지는 이제 병원에 왜 와야하는지도 용납이 쉽지 않은 치매 10년째의 환자이다.

아버지를 따로 모시고 젋은 여의사가 몇가지 질문을 하는 동안 내 손을 잡은 아버지가 " 뭘 이런걸 하는거여? 집에 가자" 하시는 동안 의사의 질문에 답은 제대로 된게 없이 " 난 괜챦아요." " 뭐라구요? 그게 무슨말이예요?" "얘, 뭐라고하시는거냐?"가 쉴새없이 반복되었다. 그동안 다른 진료실에서 담당의사를 만나시는 어머니는 고단한 그 일상을 의사에게 반복하고 계실 것이다.

이전과 별다를 바 없는 진료와 약처방을 받아 한 고비를 넘긴 우리는 이미 모두 지쳐있었다. 하늘이 여전히 희끄무리 구름이 걷히지 않아 언제든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택시를 타고 우리집으로 향했다.

이사한지 한 달, 집구경을 하러 딸네 집에 들러가자는 내용을 이해하셨는지 10여분동안 별 말이 없으셨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그 사이 이 걸음의 의미를 잊어버린 아버지는 " 어디가는거야?" 재차 물으셨다.

현관에 들어서자 "야 좋다"던가 "이야 넓다, 여긴 몇 평이야?"를 서너번 반복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말소리를 줄이시며 어머니 소매를 끄시는 모습이 보였다. 참외를 깎아 접시에 담고 있는 내 등뒤로 아버지가 평소의 장난기있는 목소리로 어머니께 말했다.

" 돈 좀 줘봐. 새 집에 오는데 빈손으로 왔으니 이건 경우가 아니쟎아."

" 그럼 이만큼이면 될까?" 이미 경우가 바른 어머니께서 두둑한 봉투를 준비해오셨고 그 중에 십만원을 꺼내 아버지께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 어서 이리 앉아 이것 좀 드세요."

" 어허, 축하한다. 뭘 좀 사와야하는데, 그냥 왔으니 이거라도 받아라. 집이 참 좋다" 봉투를 건넨 아버지가 동생네 34층 집에서 밖을 내다보실 때 하는 동작, 허리춤에 양 손을 얹고 허리를 꼿꼿히 편채 거실 밖 창으로 주변을 살펴보시며 "참 좋아"를 여러번 말씀하셨다.

경우를 헤아린 남편이 다행스럽게 느껴져선지 어머니 표정이 조금 나아보였다.


퇴근 길,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려는 딸들의 걸음과 주문한 피자가 함께 당도하고 " 이게 저녁이예요. 한 조각 드셔보세요" 했지만 "하나도 배 안고파, 못 먹겠어."하시며 도리질을 하시던 아버지는 어느샌가 두쪽을 말없이 드시고 계셨다. 치매가 심해질수록 음식도 한가지만 드신다는 어머니의 덧붙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삼시세끼의 모든 밥상을 매우 정갈하게 차리셨고 그 상을 받으시는 아버지는 늘 엄지척을 하시며 좋아하셨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에 밥을 말아 그것만 드시려고 해서 어머니의 젓가락은 국밥을 뜬 아버지의 수저에 생선이며 고기, 나물을 부지런히 올려 놓느라 정작 본인의 식사야말로 한가지 드시기에도 분주하기만 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차가 없어 택시로 집까지 배웅을 하려했지만 기어코 버스를 고집하시기에 이웃동네를 돌아 어머니댁으로 가는 긴 여정의 버스에 올랐다. 퇴근시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일에 지친 사람들이 여든 다섯 아버지에게조차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아버지는 내내 서 가셔야했다. 서너 정거장을 지나자 빈자리가 나왔다. 아버지가 극구 사양을 하시니 어머니가 앉으시고 그 앞에 서신 팔힘이 좋은 아버지가 손잡이를 쥐고 잔뜩 긴장하신게 보였다. 어머니의 나풀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한 참을 가야했다.

버스에서 내리신 아버지가 익숙한 동네 모습에 듬성듬성 빠진 이를 훤히 내보이며 환하게 웃으셨다. 긴장이 풀어지며 상기된 볼이 발갛게 보여 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 너 헛걸음한다" 다시 돌아가야할 나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웬일이시지?' 농까지 하시는 아버지, 몸이 고단할 때 느껴지는 아스라함과 후둑후둑 굵어지는 빗줄기 모두 현실감없이 감각적이었다.

뭐라도 더 싸주고 싶은 어머니가 " 이것도 가져가 먹어봐라"하시며 소분한 음식을 작은 배낭에 넣어주셨다.

" 미는게 편하지" 어깨끈 길이를 메만지며 하시는 말씀이다.


" 전 바로 가야해요. 벌써 어두워지네요."

"그래 어서 가서 쉬어야지" 하신 아버지가 병원동행한 나에게 다시 하신 한마디.


"오늘 고생했어!"

'고마워요, 나도. 오늘만 같으면 원이 없겠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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