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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당아욱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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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May 15. 2023

엄마의 전화번호부

보충기

새벽같이 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바통을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치매로 혼자 계실 수 없는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어머니는 남대문인근에 있는 보청기 가게에  다녀오실 것이다.

어머니댁  거실로 들어섰을 때 소파에 앉아계신 아버지는 티비를 보고 계셨다.


" 어 왔어?" 아버지의 인사는 왔니? 왔어? 가 대부분이다. 버지는 나를 무척 이뻐하셨다. 겅중거리는 아들보다 차분하게 공부를 더 잘하는 나를 더 치켜세우는 적이 많았다. 나의 두 딸들이 20대가 되고 밖으로 더 바쁜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나를 위로하신다며

" 너 심심하게 됐구나! 우리랑 놀아, 여기 와서"라고 말씀하셨다. 여자 형제도 없고 시댁식구도 많지 않은 내가 외로울까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묻지도 않는 내게 " 엄마는 뭐 사러 갔어." 아이가 된 아버지가 떠올리는 말이었다.

"아, 그래요?"그런 척하며 옆으로 앉았다. 티비를 봐도 이해가 될 리 없는 아버지와 한 시간가량을 본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엄마를 찾고 재촉할 아버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니 아버지는 앉은 채로 졸고 계셨다.


" 아버지, 들어가서 한 잠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마다하지 않고 방으로 가시는 아버지가 고마웠다.

어머니는 병원을 혼자서 해결하실 때가 많았다. 자식들을 불러 오라가라 하지 않는 어머니의 깊은 배려가 늘 감동적이고 미안하다.

"연락을 하시지, 혼자 안 그러셔도 돼요."

" 물어서 물어서 다 하면 되는데 뭘 그래."

하기는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앞장서서 미국여행을 다녀오신 적이 있다.

물론 도착지에는 사촌 오빠가 나와 있었지만 환승이나 출구 찾기, 짐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 금발의 승무원이 지나가더라구, 다가가서 티켓을 보여줬지 뭐. 그랬더니 데려다주던데 뭐, 나 아님 시간도 못 맞췄을걸" 어머니의 환승 무용담은 그랬었다.


퍼뜩 한 번도 동행하지 않은 보청기가게의 전화번호를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 년 만에 이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실 어머니가 보청기 없이는 하나도 들으시지 못하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조차 얼마 전에 알았고 세금에 환급까지 소급하여 받은 것도 두 달 전이었다. 어머니의 자기 관리가 너무나 철저했던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전화책을 뒤적여 어머니의 필체를 들여다보며 보청기를 찾았다.

ㅂ칸을 뒤적이다 나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보충기가게 : 02) 000-0000

보청기를 어머니는 언제나 보충기로 소리 낸 것을 그제야 알았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아버지가 깨실까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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