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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당아욱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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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Apr 27. 2023

우리 이쁜 딸!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전화를 받으시는 우리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다. " 어, 우리 이쁜 딸~"


언제부터 엄마는 나를 이렇게 이쁘다고 하셨던가? 내게 언제나 최고의 사랑을 주셨지만 소리를 내어 나를 이쁘다고 하신 적은 없었다. 그렇다. 되짚어보니 젊어서의 나를 이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새 옷을 사주시고 어울린다 정도의 말이 있었을 뿐! 


엄마의 미적 감각은 여느 노인들에 비해서 꽤 높은 편이시다. TV를 같이 보면서

 "유이가 살이 빠지니, 더 이쁘구나!"라고 하실 때 진심으로 놀라웠다. 

대개의 팔순 노인들에게 그 연예인은 복스러운 미인이 아니기에 말이다.

파마를 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다 포일파마(심하게 펑크분위기)한 다소 획기적인 내 머리를 보시고는 

" 어 어? 근데, 허허 어울린다"라고 말씀하신 우리 엄마.

서태지가 무슨 경연 방송화면에 처음 나타났을 때 그에 대한 낮은 점수결과를 물끄러미 보시다가 "새롭고 좋은데 점수가 야박하다" 하시는 말씀에도 저으기 놀라 다시 쳐다본 기억이 난다. 


" 얘, 화분은 다 모아 놓거나 제대로 된 것 하나만 놓아야 이쁘단다. "


분명 미적인 감각이 뛰어나신 분이다. 어머니의 정갈한 집안은 보는 사람들마다 "그 연세에!"라는 탄성을 갖게 한다. 전쟁통에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셨을 리 없는 어머니의 미적감각은 그저 놀라운 DNA덕일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자라는 동안의 내게 한 번도 너는 참 예쁘다! 고 하신 적이 없는데. 환갑이 지난 내게 자주 하시는 말.

"우리 이쁜 딸!"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 우리 이쁜 딸!'은 어머니가 혼자되시고 시작된 말이 틀림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충격과 회한의 세월로 반년을 훌쩍 넘긴 후 시작하신 그 말은 언제나 잔뜩 상기된 음성으로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다.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말로 들리는 엄마의 '우리 이쁜 딸'

그렇게 나의 전화를 받으실 때 엄마의 곁에는 누군가 계신 것이다.
그 순간 엄마는 경로당에 다른 노인들과 같이 계시거나, 집으로 누군가가 방문하여 말씀 중이셨을 것이다. 

내가 전하는 이야기가 기쁜 것이거나 걱정거리이거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소식이든 엄마의 경쾌한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엄마가 하시는 모든 응답에는 엄마라는 단단한 존재감이 실려있다. 



아직도 내게 삶의 잣대이신 우리 엄마!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이쁘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엄마.

" 네.. 저예요. 엄마가 젤 사랑하는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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