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해 도시락을 싼다고, 그것도 매일 한다고하면 사람들은 어머!를 내지르며 어떻게 그런 수고가 가능한지 묻는다. 결혼한 딸의 아침을 위해 매일 아니,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온지 딱 1년이 지났다. 선생하는 딸이라 방학을 제외해야 하니 9개월에 가까운 아니, 거기에 주말과 각종 국경일들을 제외하면? 아니로구나! 등교일 190여일이라면 계산이 빠르다. 맞다! 190일 정도겠다. 더러 맥모닝으로 대체한 날을 제외하면 180일 가량의 도시락을 싸 왔다. 아직 6개월정도가 더 남아있다. 딸을 위한 내 정성이 그닥 힘들지 않지만 가만 생각하면 꽤 곤란한 수고일 수도 있다. 집과 일터가 너무나 먼 사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으니 할 수 없다.
'아침 빈 속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를 놔둘 수가 없다.'
내가 아이를 위한 정성은 내 자식말고도 교실에 있었던 지난 날의 제자들에게도 후했다는 평을 듣는다. 대체로 나는 이타적이라고 평가된다. 눈물도 많고 마음도 약하고 여린 편인게 사실이다.
이런 나를 아이들은 선생님은 착해요. 우리말을 잘 들어줘요라고 했다.
대학원 시절 논문을 심사하던 교수가 말했다.
" 뭔가 달라. 선생님은 뭔가 여느 선생님들하고 다른게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아~ 뭔가 달라!"
심사를 당하는 나의 입장에서 달라가 의미하는것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이 고개를 갸웃하기를 여러 번, 다 읽고 끝낸 논문의 가본을 덮으며 그녀가 말했다.
" 아, 알겠다. 그러네!" 근엄하던 표정의 교수가 스스로 대견한지 자신의 고개를 아래위로 두어번 끄덕거리며 "선생님은 아줌마다운 뻔뻔함과 그악스러움이 빠져있네!" 대체 그녀는 나의 어디를 보고 그렇게 나를 재단?했는지 알 수가 없다. 시장에서의 흥정을 보여준 적도, 집안의 속썩인다는 식구들 이야기 등의 사적인 말들을 나누어 본 적도, 그런 자리조차 가져본 적도 없는 내게 무엇이 보였던 걸까?
나와 제법 오랜동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배 선생도 한번은 그렇게 말했다.
"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선생님이 제일 이타적인 것 같은데요." 똑똑한 후배인지라 괜히 뿌듯했다. 뿌듯했다면 이타적이라는 게 바람직하다는 신념이 내게 있었고 그것을 지향하며 살아온 것일까?
최근에 나는 타인을 기억하게하는 한 마디, 혹은 하나의 단어나 또는 인물등 매개가 되는 것에 관심이 크다.
콜린퍼스를 보면 나는 꽃이름씨를 떠올린다. 영화속 지적인 그의 면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그녀가
" 저도 그 사람 좋아해요."라고 덧붙였는데 그 짧은 말에는 "저는 지적인 사람을 좋아해요."를 넘어 "저는 지적인 것을 지향하는 사람이지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고, 실제로 그녀의 성품은 그랬다. 언제나 당당하고 거짓이 없으며 자신을 만들어 온 배경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타입이었다.
얼마전 시작한 라인댄스 수업에서 18,9년만에 만난 동료가 나를 기억하는 한마디는 "발꿈치를 들고 다녀보세요!"였다. 뱃살을 고민하는 그녀에게 내가 한 그 말을 정작 나는 잊고 살았는데 그녀는 그 오랜 시간동안 나의 그 말을 간간히 떠올리고 시도하고 잊기를 반복하며 살았다고 한다.
30대에 춤에 빠져 다시 태어나면 댄서가 될거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수시로 하고 산 적이 있다. 당시엔 비트가 강한 음악소릴 들으면 심장도 함께 뜀박질하고 몸은 리듬을 타며 흥겨웠다. 내겐 흥겨웠던 그 몸짓이 누군가에게는 " 저 여자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 이라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요?"라는 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전해들었던 적이 있다. 하하하 그럴 수도!
그 말을 한 이에게 나는 여전히 춤바람과 함께 떠오르는 여선생일 것이다.
누군가를 하나의 문장, 하나의 장면, 하나의 단어나 인물 등으로 떠올리는 것이 흥미롭다. 그것은 대체로 전부이면서도 전혀 아니기도 하다. 판단은 보류하되 떠올리고 추억하는 일은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한마디는 무엇이었을까?
매일이요? 라고 뜨악하며 놀란 사람에게 나는 '도시락'이란 단어가 매개가 되어 기억될지도 모른다.
일단
딸에게 나는 최선을 다한 엄마이기는 할 것이다.
가끔 이 도시락의 기억이 딸의 인생 전반에 간질간질한 추억이 되어주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