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팩키지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한다.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해서이기도 하고 의외의 모험심이 있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하리라 믿는 구석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미국 여행 26일 동안 그랜드캐년과 라스베가스를 도는 4박 5일 서부투어와 워싱턴에서 출발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를 돌아 뉴욕에 이르는 1박 2일 두 구간을 빼고는 자유여행을 하게 되었었는데 그게 해외여행의 처음이었다.
이후 유럽의 이것 저곳이며 대만 등의 이웃나라들을 가는 동안 항공권을 구입하고 여행 일정을 짜는 일을 자식들에게 맡기지 않고 나누어했다. 파리를 두 번째 갈 때부터는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해 왔다.
그러던 나였는데. 최근엔 이상하게도 예약과 계약에 부담감이 느껴지고 숨이 답답해 온다. 한 번 예약하면 두 번 들여다 보기도 싫고 항공권을 프린트하는 일, 사전 체크인을 하고 갈 곳마다 동선을 짜고 검색하는 일들 모두가 힘에 버거웠다. 이번엔 십여 년 만에 아이들과 같이 가자니 (한 나라일 뿐 다 같이는 아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는 카톡에서부터 진이 빠진다. 정보과잉시대, 영국 시리즈 블랙미러가 다른 곳이 아닌 내 귀와 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며칠 째 종일 핸드폰으로 검색하고 정보 전달하고 가입하고 정보 받고 가입하고 점수 쌓고!!!!!
아이들의 스크롤을 내 눈은 따라가지 못한다.
화면은 아무 정보를 남기지 않고 후다닥 지나가버리고 아이들의 설명을 내 귀가 다 담아내지 못한다.
알고 있다. 나는 똑똑하고 총명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사회 이곳저곳의 시스템이나 법규이해에도 느린 편이다. 그렇다지만, 이 나라에서 발급한 증서로 보면 학력으로는 밀리지 않는 처지인데도 요즘의 세상을 따라가기에 숨이 차다. 각종 앱을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이다. 키오스크를 두려워하지는 않으나 만만치도 않다. 자동화된 기계앞에 사람이 쩔쩔 매게하는 기술의 진보에 은근 화?가 난다.
사람의 일자리를 줄여서 그 사람의 노동을 모두에게 전가하는 그림자 노동이 만연한 시대! 셀프 체크인이라는 이름의 작업을 하다가 편리보다 불편함이 느껴지는 나이든 세대의 감정이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딸아이의 말로는 스위스를 여행했던 사람들이 남긴 여러 가지 정보 중엔 정말 기가 찬 노릇의 정보를 검색하고 정리하여 남긴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여행비용을 엑셀로 정리한 정도는 별 것도 아니다. 스위스의 비싼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짠 식단이며 그에 따른 장보기 재료와 가격까지 정리를 해두었거나 여행경로를 여러 가지 조합으로 짜고 그 특징과 장단점을 비교 설명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대체로 한 지역에서 추천할 명소들은 유튜브에도 널리고 널렸다. 그걸 비교하여 장단점을 빼곡하게 정리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부러운 게 아니라 대체 왜?라는 의구심이 든다.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다소 계획적이고 노트정리도 매우 잘하는 딸애가 나와 갈등하게 될 지점이다.
"엄마 몽마르트르 가는 경로 좀 알아봤어요? "
"아니. 저쪽으로 가면 될 거 같은데? 언덕이니 그 방향으로 들어서는 버스를 타보자"
"어디서 내리면 되는데?"
"몽마르트르가 젤 높은 언덕이니까 고개 올라서면 내리지 뭐, 잘못 내려야 좀 걸으면 될 거고. 정류장 간격도 짧고" 이런 식인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예전 같지 않으니 너그러워지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 몸이 과거와는 다르다. 일단 글씨를 보기가 참 힘들다.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 기억나지 않는 이름과 비밀번호들!!
정말 단순하게 살 수는 없을까? 그냥 최소만 하면서 말이다. 여행도 빠니보틀처럼하면 안 될까? 그냥 갔다가 오는 항공권을 현지에서 찾아보고 예매도 맘 가는 대로 하고 다니면 안 될까? 짐도 없음 안될까? 바지나 티셔츠 하나 더 챙길 정도면 안될까? 동네 나가듯 갔다 오면 안 될까?
안되면 말면 안될까?
딱 한 번만 그렇게 다녀보면 안 될까?
빠니보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