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소동

누구에게든 일어날 법한 일

by 바카롱

스위스 도착 3일째 루체른에서 그린델 발트로 향했다. 본격적인 스위스다 싶은 인터라켄과 그린델발트지역에서 융프라우와 클라이네 샤이덱 트래킹에 이어 라우터브루넨을 보기 위해 한 곳에서 3박을 하기로 한 여정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동행한 큰 딸이 찾은 숙소는 사진으로 보기에도 근사했다. 스위스 전통가옥인 샬레의 발코니에서 그린델발트의 명물 아이거북벽이 바로 코앞으로 근사하게 펼쳐져 있었다.


루체른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리기산 산악열차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다 보니 5시경에야 루체른 역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코인락커에서 배낭을 찾아 메고 바로 오는 기차에 올랐다. 숙소가 있는 그린델발트까지 2시간 33분이 소요된다고 SBB앱에서 확인하였다. 일반적인 체크인 시간을 한 참 지난 후 도착할 것을 염려한 딸이 호텔 측에 늦겠다는 소식을 전하니 문제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걱정이 컸던 딸은 마음을 놓았다.옆 좌석엔 잉글랜드에서 대가족이 함께 했는데 남편 둘은 모두 큰 캐리어를 감당하느라 쩔쩔매고 그들의 아내들은 어린 남자애들을 건사하기에 바빴으며 80은 돼 보이는 여자들의 어머니는 걸음이 힘들어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의 모습과 달라지는 산세를 번갈아 보느라 지루할 새가 없었다. 어리광으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4살 정도의 사내아이 탓에 8살은 돼 보이는 형인 듯한 아이는 매우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누구보다 제일 뒷전일 탓 일거 같았다. 동생의 생떼를 보면 못마땅한 표정을 짓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다시 눈치를 보곤 했다.


그린델발트가 가까워 오자 창밖으로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니 할머니와 나는 고개를 빼고 눈이 마주치면 어메이징! 을 장착한 미소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 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할머니께서 8살 형아이의 팔을 끌어 자신의 위치에서 장면을 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보였다. 아이는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 다시 건너편의 자기 자리로 옮겨 앉으며 수줍어했다.

내가 일어나서 그에게 자리를 바꿔 앉자고 제안했다. 어린 소년대신 그의 할머니께서 좋은 분!! 이라며 감사의 악수를 하니 아이가 수줍게 내 자리로 옮겨 앉았다.


아이를 살피고 친절을 베푸는 습관은 내게 거의 천성이다.


여기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린델발트에 도착하여 버스노선을 찾으니 노선 변경과 함께 고지된 종이 안내판에 의하면 마지막 차의 시간이 이미 지나버려 걸어야만 했다.

말 그대로 20여분을 넘게 걸어 올랐다. 경사진 길이라 아이거북벽의 감탄은 절반이 지나자 사라지고 숨은 차올라왔다. 바로 여기야! 를 외친 것은 나였다. 젤 먼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고 건물 앞에서 남편과 아이가 올라서길 기다렸다.


건물에 들어서자 온통 나무로 장식된 깔끔한 숙소엔 은발의 노년여자가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연락한 바로 너!!!

여권을 꺼내며 몇 마디 주고받고 묵직한 쇳덩이 열쇠를 건네받아 2층으로 올라와 17호실을 찾았다. 단출한 방에 깨끗한 화장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전용 발코니에서 바라보이는 아이거 북벽의 놀라운 자태!! 이 숙소를 예약한 딸은 신이 나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잘 찾았네, 숙소! 우리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샤워 후 산의 기온에 한기가 느껴졌지만 발코니에 성찬이라고 김부각과 라면으로 상을 차렸다.



난 더 앉아 있으련다

다 좋았다, 여기까지.

다들 눕는 것을 보고 나도 자리에 누웠다. 목가적인 나무가구들에 어울리는 빨간 체크무늬 이불이 얇아 매우 춥게 느껴졌으나 바로 곯아떨어졌다.


잠시 후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인데 머리맡 문이 열려있어 기겁을 했다.

ㅡ옛날 방식의 도어를 잠그지않은 탓이었다.ㅡ거기엔 복도의 불빛을 등지고 검게 보이는 두 사람의 형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쳐다보니 웬 젊은 여자와 키가 큰 내 또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와 남편은 자고 있었다.


대화는 영어로 했지만 그들은 동양인이었다. 젊은 여자가 이 방은 자신이 예약한 방이라며 프린트물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17이라는 글자가 보인 것도 같고 그녀가 그렇게 말하기에 그렇다고 생각한 것도 같았다. 일단 어둡고 안경 없인 안 보이니. 숙소를 예약한 딸을 흔들어 깨우고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남편은 놔둔 채 넷이 1층 로비입구로 내려갔다. 불을 켜고 프린트물과 우리의 메세지를 서로 들이밀며 서로의 입장을 얘기했으나 서로가 이해가 되지는 않는 상황!

늦을 것 같아 메일을 미리 보냈고 답장으로 방번호를 미리 안내받았다는 그녀의 프린트물과 딸아이가 호텔 측으로 보낸 메시지와 답장을 서로 보여주며 이게 무슨 일이냐? 팔짱을 끼며 갸웃했다. 첨엔 이중으로 예약을 받은 호텔 측의 실수로 짐작했다. 할머니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대만 아가씨의 프린트물에서 연락처를 찾아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할머니는 바로 어디선가 나타나셨다. 아마 그때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내가 남편을 깨우러 올라갔었던가? 아니면 캐리어 두 개를 끌어안고 지쳐 엎드린 대만아가씨의 엄마와 대화를 나눠보던 중이었을까?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께서는 양쪽의 쏟아지는 정황얘기에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자꾸 저으셨다.


이미 11시 30분이 된 오밤중


갑자기 나의 잘못이 아닌 걸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젤 먼저 내가 찾고 들어오게 했는데 호텔이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걸까? 딸이 카톡으로 준 호텔이름과 벽이나 방명록(방명록에 사인도 했었다 ㅎㅎ) 겉장에 붙어있는 호텔이름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어라? 이름이 똑같은데 이난리는 뭐지?


잠시 후 Wait, Wait! 할머니께서 작은 안도의 미소와 고갯짓을 하시며 진땀을 닦으시는지 머리를 쓸어 올리셨다. 나의 딸도 동시에 자신의 예약 과정을 찾아 핸드폰을 뒤적이다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 둘은 동시에 답을 찾은 듯 눈을 마주치며 아주 어려운 문제를 푼 수학자들과 같은 표정을 나누고 있었다.


"맞아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거 같아요." 할머니께서 그제야 -오래전 기억인지- 입을 여셨다.

"맞아요. 이름이 같은 호텔이 또 있어요." (조금 떨어진 거리에!)


2층에 올라 남편을 흔들어 깨우고 짐을 추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분, 손빨래로 널어놓은 양말과 속옷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우는 나의 순발력과 민첩함에 스스로 감동하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도, 우리도 서로 미안해!를 연발했다.


딸이 실수를 한 것이었다.

1. 동양인

2. 부모와 딸 세명

3. 같은 기간 3박

4. 늦겠다는 메일과 메시지의 사연(딸아이는 이곳이 아닌 원래 본인이 예약한 호텔 측 답을 여기서 받았다고 생각하고는 들어섰고 주인아주머니는 얘가 그 애지, 싶어 여권확인은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오밤중 소동의 원인은 이러했다.

구글지도로 이곳저곳 머물 곳을 찾다가 적당한 위치, 이동편의, 가격, 리뷰(사진포함)등을 보고 분홍색 숙소마크를 클릭하면 그 호텔의 온라인 중계플랫폼 OTA(online Travel Agency)하단에 딸려 보이게 된다. 그중 하나를 골라-부킹닷컴이던 아고다던 트립닷컴이던 호텔 홈페이지던 -클릭해서 예약을 진행했다면 이날 오밤중 사달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딸은 호텔의 이름만을 외워둔 채 다음날 구글에서 바로 이 호텔이름을 입력하여 홈페이지로 접속하여 예약을 했는데 주소까지는 점검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위스니까(작은 나라다),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그 언저리니까 지도를 확대했을 때와 아닐 때의 거리정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거였다.

늦어도 된다는 답을 한 호텔의 그 방(침구가 훨씬 더 좋아 날로 샌 밤이 더욱 안타까웠다)은 그날 비어있게 된 것이고 우리는 할머니의 친절?로 담요를 두른 채 의자에 기대어 밤을 나야 했다. 샬레도 나름이겠지만 일반적인 호텔의 로비에 있는 쿠션 좋은, 긴 소파가 없이 모두 나무로 만든 의자와 벤치들이었다. 등은 아리고 추워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잠은 들었다 깨기를 서너 번, 새벽 4시에 문밖에 나섰다가 기겁하여 되돌아왔다.


아이거북벽의 거대한 검은 형체가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폭이 좁고 길기만 한 나라 칠레에서 세상에서 가장 긴 안데스산맥(평균고도 4000미터)을 올려다보면 그렇게 공포스럽다고 최준영박사는 말한다.


도저히 5시 48분 첫차를 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제각각 시간을 죽이다가 6시가 넘어 숙소를 나왔다. 여명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진짜 추억 제대로 만들었다며 웃었다. 스위스의 명물, 노랑 파랑의 새벽기차에 올라 예약했던 호텔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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