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체중이 빠지며 기운이 없었던 내 몸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집수리가 빌미가 되었을 것이다. 공사가 마무리되자마자 여러 날 누워서 종일 잠을 자거나 기침에 몸을 흔들거나 내가 죽은 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다가는 어느새 까무러쳐 내내 잠을 자길 일주일.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식욕이 사라져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더니 이주일새 3킬로 가까이 빠지고 가족들은 중병이 걸린 건 아닌지 걱정이 컸다.
몸살일 뿐이야! 노화와 몸살이 겹쳐 그렇지.
추석명절을 가까스로 지냈다. 집수리를 마친 나의 집을 보려는 어머니와 두 딸아이 내외 함께 외식으로 추석명절상을 대신하는 중에도 기침이 나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모두를 보내고 다시 누워 긴 잠을 자며 나는 죽은 게 아닐까? 꿈을 꾸기도 했다. 그리곤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내게 온 브런치 스토리 당부의 메시지가 부담이 돼 선지 '그녀는 죽었다'는 문장이 꿈결에 떠오르다 사라지곤 했다.
오랫동안 너무나 달려왔다. 작년부터는 잠을 자다가도 숨이 차오르기도 했었다. 모든 의욕이 상실된 채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하루가 나쁘지만도 않았다. 새벽공기가 달라진 아침을 열며 동트는 모습을 즐기던 초가을을 누워서 보낸 것만이 아쉬웠다.
아쉬움을 달래러 말 그대로 어슬렁거리며 한낮 동네를 걸었다. 예전에 비하여 걸음의 속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바쁠 것 없고 욕심도 없어졌다. 출산율을 걱정하는 요즘, 오후시간에 동네를 걷다 보면 정말 아이구경이 힘들다. 얼마 되지 않는 아이들은 학원에 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활기차게 노는 모습이나 소리를 듣지 못함이 아쉽다.
대신해서 나이 드신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이셔서 해를 즐기시는 게 눈에 들어온다.
"아까 그 빨간바지, 그래 그 빨간 바지말이야." 말씀하시는 어르신도 빨간 상의를 입고 계신다.
가만 보면 노인분들은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 그들을 대체하는 것은 아파트 이름이거나 동이나 호수인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차림새가 대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가 동의할만한 이미지나 생김새, 독특한 버릇이나 옷차림등으로 이름을 대신해 기억되곤 한다. 나는 운 좋게도? 이름도, 얼굴의 이미지도 매우 강한 편이다.
외국인에게 드래곤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얘기하면 감탄하는 경우가 흔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지혜로운 용(룡으로 소리낸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한자어를 설명해주곤 한다. 지혜와는 상관없는 풀의 이름인데 당최, 풀과 용의 조화로 이름을 지은신 큰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지만 이름이 강렬한 덕분에 십여 년이 지나 내편에선 기억하지 못해도 나를 알아보는 이는 한 명도 빠짐없이 나의 이름을 기억한다. 더러는 바다의 룡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리는 비슷하니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여름,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밤길은 매우 외진 데다가 뉴스로 전해 들은 범죄뉴스에 긴장을 하고 거의 뛰다시피 하며 걷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없어 긴장을 놓을 수 없는데 반대편 멀리에서 멀끔히 차려입은 청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말끔히 입었다고 다 멀쩡하란 법은 없지' 눈도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지? 생각하며 먼 곳을 응시한 채 걷다가 지나쳐 더 빨리 걷고 있었다. 한참을 멀어지는 가 싶더니 반대로 돌아서 내쪽으로 뛰어오는 청년의 발걸음 소리에 긴장이 되었다. 왜 다시 이쪽으로 오는 거지? 머리가 쭈뼛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지하차도 옆길이라 사람은 하나 없고 불빛도 잦아드는 외진 길!
"저 성함이? 00룡선생님 아니신가요?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그 맑간 얼굴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15년 전 6학년, 내게 영어를 배웠다는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아아~ 너로구나!" 서른이 돼 가는 아이의 얼굴에 기억이 가물거렸다.
"아직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마이클잭슨 힐 더 월드 좋아합니다."
누군가는 내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면서 덧붙일 것이다. 거기엔 저음의 목소리나 아이라인으로 그려진 눈매거나 또는 무엇일까? 가만히 되짚어본다. 빨간바지는 예사롭지 않은데 그들의 대화의 주인공은 왜 화제가 되었을까? 예사롭지 않은 빨간 바지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더 있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