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러신 편이 아닌데, 친척들에게서 들려오는 일화에 자신의 생각을 한, 두 마디 얹어 말씀을 하시긴 해도! 어머니가 다른 사람을 쉽게 평하거나 험담을 하시는 것을 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경제적인 문제로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위를 두고도 비난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애쓰는데도 안 되니 어쩌겠냐! 네가 버니 다행이고, 아이들이 제 갈 길 잘 가서 고마운 걸로 생각해야지" 하시는 어머니시다.
나는 우리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몇몇 가지 일화를 말하면 들은 이는 모두 대단하시다는 말을 하게 된다. 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 대한 아쉬움이나 노여움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나도 올케를 이러니 저러니 말하지 않는다. 82세인 어머니께서 나와 남동생네 김장까지 해준다면 말 다한 것이다.
"김장 잘 받았다고 올케한테 전화는 왔어요?"라고 어머니께 물어보지 않는다. 물론 나의 올케는 말이 적을 뿐 좋은 사람이다. 어머니도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무슨 뒷말을 해?라고 하실 분이다.
엄마의 인품은 이 이상으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내 아이들을 키워주셨어도 생색내지 않으신다. 아이들을 돌 보는 중에도 혼 낼 일이 있으면 남이 보지 않는 데서 따뜻하고 따끔하게 일러주시는 방법을 택하는 어머니는 그야말로 교육의 기본을 아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따위의 위엄도 갖지 않는 따뜻하고 현명한 어머니에게 감탄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머니시다. 그런 어머니가 하나의 일반적인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일면은 타인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하시는 순간들이다. 최근에 부쩍 그러신 편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경로당에 다니시면서부터인 것 같다. 함께 먹을 음식도 해서 나르시고 각종 행사 사진도 카톡으로 전송하시며 일상생활의 활력으로 여기시니 마음이 편하다.
이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어머니와 나는 자매처럼 주거니 받거니 한다. 내 세상에 속한 이들도 어머니와의 대화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사라진다.
옷을 희한하게 입으시는 분, 얌체처럼 한 번도 자신의 주머니를 내어 놓지 않으시는 분, 말이 거칠고 욕도 수시로 하시는 분, 과장과 허영이 많아 자신이 가진 것으로 허세를 부리시는 분! 다양한 경로당 어른들을 평하실 때 어머니와 나는 같은 취향으로 결속하며 외동딸의 처지에서 벗어난다.
그러신 어머니가 엊그제 어머니집 앞집에 사는 남자이야기를 꺼내시며 인물이 참 좋다고 시작하셨다.
"근데 글쎄, 한 번도 인사하는 법이 없으니 원!"
"한 번도요?"
"그래, 한 번도! 이사 온 지가 벌써 4년째지? 그렇게 봐 왔어도 인사 한 번을 안 한다. 눈이 마주쳐도 말야, 글쎄"
"허허 이상하네"
"내가 독거노인이라고 우습게 보는 거 같아"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라는 뉴앙스이다.
"아고, 엄마는! 그럴 리가요."
"그거 아님 뭘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다른 사람을 쉬이 평하지 않으시는 엄마에게 불편함을 준 앞집 남자, 마주친 적이 없다.
"못된 거죠." 인상을 쓰며 대신 말해주니 더는 이어가지 않으신다. 그래도 몇 년을 앞집으로 살며 인사 한번 안 한 남자가 못되기만 한 게 아니라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남자라고 더 한 마디 하려다 관두었다.
엄마가 느끼는 '혼자'라는 말, 독거노인이라는 말이 마음 아파서였다.
그럴 리가요!
'엄마, 더는 조급해하지 마세요.'
빈 컵을 들고 주방으로 가며 엄마의 찌푸린 얼굴을 외면했다. 어머니께서 다른 노인들의 모습이나 행동을 이야기할 때 단지 험담에 그치지 않고 " 그이는 얼굴이 참 이뻐요. 나이가 들어 그렇지, 젊어서는 진짜 예뻤을 거야." 라든가, "그이는 일을 아주 시원시원하게 잘해요. 손이 얼마나 야무진지"라던가, "아휴 얼마나 알뜰한지 우리 같은 사람은 흉애도 못 낼 거다"는 등의 칭찬도 절대 놓치지 않으시는데!
인물이 좋은 앞집 남자는 인물에 걸맞지 않게 왜 인사하는 법을 몰라 우리어머니께 독거노인이란 자격지심을 불러온 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