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번 도로를 타고 이스라엘 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텔아비브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티베리아스에서 남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꺾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은 호수가 있다는 소문에 텔아비브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이스라엘 여행에서 만난 가장 보물 같은 지역은 이 은둔의 호수다. 아랍어로 샤흐네(Sakhne), 히브리어로는 간 하쉴로샤(Gan Hashlosha) 국립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연중 28도의 온천수가 흐르는 천연 수영장이다. 실제로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에 뽑힌 샤흐네는 '현존하는 에덴동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티베리아스 호텔 주차장에서 세명의 짐을 우걱우걱 자동차에 쑤셔 넣으며 우리는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는 만큼, 더욱더 아름답고 강렬한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그 바람은 현실이 됐다.
갈릴리 호수를 왼편에 두고 달리기 시작한다. 아침 햇살도 잔잔하게 내리쬔다. 당장이라도 자동차 밖으로 나가 뛰어 달리고 싶지만, 샤흐네로 가야 할 길이 급하다. 대체 여기는 어떤 곳이길래 타임지는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라고 꼽았을까.
40분쯤 지났을까.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서둘러 입장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어른 한 명당 38 NIS. 한화로 1만 3천 원 정도에 해당한다.
다른 어떤 국립공원과도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주차장. 흙바닥에 먼지는 무성하고 어디다 주차하라는 건지 선도 애매하다. 적당히 차를 대고 나니 드디어 샤흐네가 눈에 들어온다.
렌터카 쓰기를 얼마나 잘했던가. 사실 예루살렘이나 티베리아스, 텔아비브 정도만 간다고 하면 이스라엘 여행에서 자동차를 빌릴 필요는 크게 없다. 도시 간 버스 여행을 활용하면 훨씬 싸고 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중동권 여행자들 중엔 오직 버스 여행 상품만 활용해서 이스라엘 유명 도시를 관광하는 여행객들도 꽤 많다. 우리가 렌터카를 한 이유 중 8할이 이 곳에 가기 위해서였다. 다소 과장됐지만 정말 그렇다.
샤흐네의 아름다움은 그 은밀함에 있다. 이 곳은 외국인에 그리 알려진 곳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아시아인을 보기가 좀처럼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이나 다른 성지 순례 유명 관광지에서는 한국인 무리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샤흐네의 인종 구성은 이슬람 사원 수준이다. 아랍인들이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모여서 바비큐를 하거나 물놀이를 하고 있다. 갑자기 등장한 아시아인 3인방에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절경을 즐기러 갔다가 절경이 되어 버린 기분마저 든다.
아랍 여성들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는 중에도 히잡 등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고는 수영을 한다. 보수적인 옷차림의 젊은 여성 두어 명이 갑자기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건다. 이스라엘 여행 중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나도 모르는 한국 드라마와 남자 아이돌의 이름을 줄줄 댄다. 같이 있던 남편은 누군지 다 아는 모양인데 나만 모른다. 여기서도 마냥 국제 교류 국위선양을 하고 있을 순 없어서 적당히 둘러대며 자리를 떴다.
육안으로 바닥까지 보이는 호수에는 손바닥보다 큰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스노클링 장비가 없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공원 내 매점에서 스노클링 장비와 튜브를 팔기도 하지만 수경을 끼고 노는 건 우리 밖에 없다. 11시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들고 온 스노클링 장비인데 여기서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피부색부터 장비까지 하나같이 머쓱하기 짝이 없다. 말리지 말라. 일탈과 진상짓은 여행자라면 놓칠 수 없는 일 아닌가.
샘 주변을 걷다 보면 작은 호수들도 발견할 수 있다. '여기가 천국인가'하고 멍하니 자연을 관망하기만 해도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파란 물에서 천진난만하게 물장구치는 어린 아랍 아이들을 보는 것 또한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이 수천 년간 유지됐을 것이라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경이롭다. 천국을 여행 막바지에 만나게 됐다. 장구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이 나를 잠식한다. 그 햇살과, 물결과, 평화로움에 젖어들고 있으니 서울에 두고 온 삶은 돌아갈 수 없는 이생처럼 아스라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