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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만난 척박함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은 숨은 생명력이다

by 나사

예루살렘 동쪽에서 시작되는 유대 광야는 지구의 살갗 고스란히 내놓고 있다.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와디(wadi)와 급경사면에는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람이 깎아낸 지층이 켜켜이 드러나 있고, 오래전 사라진 듯한 물길도 박제됐다. 토지의 무기질조차 하얗게 증발해버린 이 사막은 척박함이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을 거쳐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길은 점점 황폐해지고 야자수조차 줄어든다. 마른 관목과 나뭇가지만 나부낀다. 사막 가운데에 메마른 2차선 도로만 남아있다. 작열하는 태양에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프다. 하늘과 태양, 그리고 토지만이 이곳을 구성한다.


생명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그 가운데 오히려 생을 영위하는 이들이 있다. 고대부터 이 땅을 수천 년째 누리며 살아가는 베두인(Bedouin)과 그들의 염소, 양들이다. 이들은 문명과 단절되어 자발적으로 사막에서 살아가는 유목 민족이다. 현재는 약 100만 명의 베두인이 유대 광야와 요르단, 아라비아, 시나이반도의 사막지대 등에서 목축 생활을 하고 있다고 추산된다.


염소와 밀가루로 만든 코브즈라는 빵을 주식으로 살아가는 베두인. 자기들끼리는 하나의 혈족, 씨족이라고 생각하고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자기 가족에게 모욕을 줄 경우에는 상대의 5촌까지도 벌하는 처절한 복수를 한다. 거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침이다.


또 외부인을 굉장히 환대를 하는 문화다. 한 번 손님이 방문을 하면 최소 3일 정도는 머무르게 해준다고 한다. 첫날에는 차를 반잔만 채워주는데 떠나기를 바랄 때에는 차를 잔에 가득 채워 줘서 일종의 눈치를 준다고 한다.


최근에는 베두인들이 운영하는 광야 숙박이 관광 상품도 꽤나 인기를 끌고 있다. 숙박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지프차나 사륜바이크를 타고 베두인 마을에 방문할 수도 있다.


유대 민족도 죽음에 가까운 이 땅에서 오히려 생명을 찾아냈다. 성경과 역사에 등장하는 광야는 강렬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루기 시작된 곳이 광야기도 하다.


먼저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이 광야 생활을 했다. 아브라함은 가족과 친척, 자신의 삶이 있던 하란에서 떠나 광야로 나갔다. 여기서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리라'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성경에서는 그가 100세가 됐을 때 아들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이 야곱을 낳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시작됐다고 전하고 있다. 야곱은 훗날 여호와와 힘겨루기를 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새로 받게 된다.


400여 년 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로 다시 나왔다. 이들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다. 히브리 출신으로 이집트 공주에 입양된 모세가 다시 이들을 광야로 끌고 나왔다. 노예 신분은 벗어났지만 다시 광야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차라리 종살이할 때가 좋았다'라고 광야 생활에 불평을 하기까지 한다. 40년이 지나서야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한다. 나라를 세운 후에도 구약에 기록된 위대한 선지자들은 광야로 나가서 강력한 영성을 키워냈다.


심지어 왕들도 광야에 나간다. 성경에는 기원전 1천 년 정도의 이스라엘 왕가 역사도 서술하고 있다. 열왕기상, 역대상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의 두 번째 왕인 다윗왕은 1대 왕인 사울의 위협에 10년 정도 도피자 생활을 했다. 이 중 3년 정도를 광야 이상을 광야에서 보냈다. 나머지 기간에도 광야는 거쳐가야 하는 지역이었다. 황량한 광야에서 헤매고 있을 다윗을 상상해보라. 그 정도 독종이면 왕 정도는 해줘야 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점령된 후에도 광야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바벨론의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 왕은 왕좌에서 쫓겨나고 광야에서 7년간 미친 사람처럼 지낸다. 성경에서는 그가 소처럼 풀을 뜯어먹고 지냈다고 한다. 이후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하나님께로 회심하고 복권에 성공한다.


신약에 와서는 세례 요한의 활동 무대가 됐고 예수님이 40일간 시험을 받은 곳도 광야다. 예수님이 마귀와 대결했다는 시험산도 이 지역에 있다.


일부러 광야 생활을 자처한 이들도 있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발견된 사해 문서는 이를 입증한다. 사해 문서는 기원전 400년대부터 기원후 300년 정도에 쓰였다고 분석됐다. 베두인 소년이 광야의 한 동굴에 들어갔다가 찾아낸 이 고문서는 여호와를 사모했던 이들이 수백 년에 걸쳐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에 집중하는 은둔 생활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때 발견된 사해사본은 현재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동굴


광야에 나가면 하나같이 삶이 바뀐다. 작열하는 태양 속에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황무지뿐이다. 그들이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황량한 바람 소리만이 유일하다. 칠흑의 밤이 오면 오직 귀에 의존해 살아야 한다. 귀가 극도로 민감해지게 된다. 저 멀리서 나는 소리도 귓속말처럼 가깝게 들린다.


민감해진 청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광야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미드바르(Midbar)다. 여기에는 '말하다'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곳, 그 음성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어 도약하는 곳이 바로 광야다.


우리에게도 광야 같은 시기가 있다. 마냥 순탄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삶에서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 광야 속에 나를 맡겨보자. 속세의 잡음과 단절되면 평소에 듣지 못하던 소리다 들리게 된다. 결국 광야도 끝이 있고 메마름 속에서 되려 더 강한 생명력이 탄생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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