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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고향에서 인생 맥도날드 버거를 먹다

by 나사

맥도날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먹어도 같은 맛일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다. 오죽하면 맥도날디제이션(Mcdonaldization)이라며 세계화의 순기능에서 예측가능성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쓰기도 한다.


땡땡땡. 조지 리처(맥도날디제이션이란 개념을 처음 주장한 사회학자)는 틀렸습니다. 맥도날드는 각 나라마다 맛이 다르거든요. 같은 메뉴를 먹어도 말이죠.


미국 맥도날드의 감자튀김은 매우 기름지다. 기름에 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동부에서 몇 년간 살며 겪은 맥도날드는 하나같이 그랬다. 일본은 버거가 작고 알게 모르게 달큼한 느낌이 있다. 한국에는 미국에 절대 없는 스몰 사이즈의 맥커피를 판다. 미국에서 스몰 맥커피는 한국보다 크다. 빅맥도 훨씬 푸지다.


여기에 맥도날드는 해당 국가 특화 상품을 팔거나 마케팅을 하는 현지화 전략을 병행한다. 유럽에서는 맥주나 와인도 함께 마실 수 있고 인도에서는 소고기 패티보다는 다른 고기를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데리야키 버거, 우리나라에서는 불고기 버거가 대표적이다.


이런 재미 때문에 여행 중 맥도날드에 한 번쯤 가기도 한다. 이번에는 예수님 고향에서 맥도날드를 찾았다.


이스라엘 북부 최대 도시 나사렛에 왔다. 예수님이 30살까지 살았던 동네로 유명하다.


나사렛은 당대에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동네였다. 지금은 이스라엘 북부 최대 도시이나 최대 무슬림 인구의 도시다. 모순적이다. 전체 인구는 7만 7천여 명으로 이중 70%가 무슬림이다.


큰 도시라고는 하나 그리 볼 것은 없다.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해서 항상 뭐가 풍성한 것은 아니지. 관광할 곳이라고는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전해준 것을 기념해 만든 수태고지교회 정도다. 성지순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우리도 수태고지 교회 관광을 마친 뒤 경후식(景後食)에 나섰다. 이럴 줄 알고 페이스북과 구글에서 미친 듯이 맛집을 찾아봤지! 렌터카를 끌고 요리조리 골목을 찾아 헤맸다.


맛집 후기 검색을 할 때는 검색 범위를 최근 1개월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폐업한 곳일 때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거기서도 나사렛까지 오면서 그 기본적인 법칙을 깜박하고 찾아봤을 줄이야.


그 맛집이 있던 곳에는 알 수 없는 옷가게가 있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시 차에 탔다. 티베리아스 쪽으로 일단 가자며 이동하던 중 아주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빨간 배경에 노란 엠(M). 친애하는 도날드 씨가 저기서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어서 오너라 세계화의 노예야.


근처 주차 타워에 차를 대고 종종걸음으로 맥도날드로 향했다. 마음이 급하다. 위산 과다 분비로 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맥치킨 세트. 콜라는 제로에 감자튀김은 필수지. 세계 어딜 가나 항상 같은 메뉴를 시킨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다른 맥도날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포장. 보이는 것에 속았다. 이 맥치킨 버거는 곧 내 인생 맥도날드가 된다.


무심하게 포장지를 뜯으며 불평을 내뱉었다. 브런치 카페는 왜 문을 닫았냐고. 엄청 맛있어 보였는데라며. 투정 부리는 나에게 동행자들은 일단 허기를 달래고 나중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자며 달랜다.


배도 고픈지라 크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한번 씹고는 잠시 멈췄다. 지금 내가 먹은 것이 맥치킨이 맞나. 한번 더 씹었다. 신선한 치킨 향이 입안에 가득 찬다. 치킨이 신선할 수 있다니. 이것은 갓 튀긴 치킨 너겟의 풍미다. 방금 씻어낸 듯한 양상추의 아삭함은 또 어떠한가. 따뜻한 치킨과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가 공허한 배를 위로한다. 고기와 야채가 어색해지는 빈 공간을 마요네즈가 온화하게 채워준다. 영혼을 울리는 닭고기 버거다.


햄버거 주제에 미쳤나 보다고, 다른 것도 맛있냐고 물어봤다. 버거라면 10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엄마도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맥도날드가 맛있네'라며. '그게 아니라 여기가 특히 맛있어'라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서로의 버거를 한입씩 뺏어 먹어본다.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음식 나눠먹는 것쯤이야. 아아 역시나. 맥치킨만 천상의 음식이 아니었다. 고전인 빅맥은 어떠한가. 흘러나오는 소고기 패티의 육즙이 뱃속을 풍요롭게 채운다.


그렇다면 더러운 기름에 잔뜩 절어있어야 하는 감자튀김은? 이미 때깔부터 다르다. 너는 왜 뭉개지지 않았니. 다른 나라 친구들은 기름에 장아찌처럼 쪼그라져있는데 넌 왜 육면체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니. 칼같이 각 잡힌 감자튀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케첩 없이 한입. 포슬포슬한 감자가 혀 위에 얹어올랐다. 아, 넘기고 싶지 않다. 감자튀김이 0칼로리라면 나는 팝콘 상자에 가득 채워 숙소까지 먹으며 갔을 것이다.



이스라엘 맥도날드.jpg

이스라엘 맥도날드는 왜 맛있나. 온갖 추론을 해봤다. 얘네가 맥도날드를 기절하게 좋아하나? 실제 패스트푸드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내가 먹은 맥도날드가 코셔 인증을 받은 건가? 코셔 맥도날드가 있긴 하다. 180개 브랜치 중에 40개 정도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갔던 곳은 코셔 맥도날드는 아녔다. 창립자도 미국인이고.


천상의 맥도날드, 그 비밀은 재료였다. 모든 맥도날드 이스라엘 지점은 패티를 코셔 인증받은 소고기로 만든다. 코셔 맥도날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또 각종 야채, 우유까지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한다고 밝힌다. 코셔 지점과 다른 곳들의 차이라고는 코셔 맥도날드는 안식일과 유대인 휴일에 쉬고 유제품을 파느냐 팔지 않느냐라고 한다.


패티를 굽는 비법도 달랐다. 맥도날드 이스라엘은 소고기 패티를 튀기는 것이 아니라 숯에 굽는다고 한다. 풍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불고기 버거도 맛있지만 숯불 불고기 버거가 나온다면 더 대박일 텐데.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면서 괜히 아쉽다.


맥도날드 이스라엘은 글로벌 맥도날드와 달리 옴리 파단(Omri Padan)이라는 개인에 의해 운영되는 회사기도 하다. 오너가 한 사람으로 정해져 있고 본사도 텔아비브에 따로 두고 있는 만큼, 글로벌 본사로부터 독립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


이런저런 토론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감자튀김 마지막 한 봉지는 고이 남겨뒀다. 다신 못 올 맥도날드 나사렛 지점을 그리며 차 안에서 먹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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