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물 위를 걷고, 불어오는 광풍을 '잠잠하라'라는 말로 다스리신 호수에 도착했다. 부활 후엔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소리쳐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곳이기도 하다. 그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갑자기 153마리나 잡게 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 기적의 호수 갈릴리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내리 달리면 티베리아스(Tiberias)라는 지역이 나온다. 이 동네는 갈릴리 호수로 더 유명한 곳이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갈릴리 호수를 마주 보고 섰다.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호수는 잔잔한 줄만 알았는데 파도가 인다. 내 작은 몸뚱이가 잡초처럼 나부끼다 결국 몸을 돌려 등으로 버텨본다. 제자들이 바람이 분다고 두려워한 이유를 알게 됐다.
그런 세찬 바람이 불 정도로 이 호수는 광대하다. 둘레만 54km다. 남북으로는 21km, 동서로는 13km다. 면적은 167 ㎢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수인 소양호(70㎢)의 두배가 넘는다. 그 광활함에 갈릴리 호수는 영어로 Sea of Galilee, 갈릴리 바다다. 고대 유대인은 바다와 호수를 같은 단어 얌(yam)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이 땅에서 갈릴리 호수는 중요한 식수 공급원이다. 이 물은 북쪽에 있는 헬몬산의 만년설에서 나온다. 이스라엘 수도 당국은 이 호수에서 물을 길어 전국으로 보낸다. 전체 식수 공급량의 40%가 여기서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생명 같은 존재다.
이곳에서 나오는 물이 요단강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 사해로 흘러든다. 생명에서 죽음으로 귀결되는 물이다.
이스라엘에서 보기 드문 커다란 담수 호수인만큼 인구가 밀집하기 시작했다. 100년 전 2만 명에 불과했던 주변 인구는 현재 30만 명에 이른다. 또 매년 수천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호수를 둘러싸고 각종 리조트, 호텔, 에어비앤비까지 빽빽하다. 테라스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는 운치가 있다. 가격도 합리적으로, 1박에 10만 원도 하지 않는 호텔이나 리조트도 쉽게 찾을 구 있다.
그냥 호수를 둘러싼 휴양지처럼 보이지만 알고 가면 더 재밌는 곳이 이 지역이다.
먼저 예수님이 미친 사람에게서 악령을 쫓아내 돼지떼로 몰아넣은 곳이 갈릴리 동쪽의 거라사 지방이다. 이 귀신 들린 돼지떼들은 갈릴리에 맞닿은 절벽으로 떨어져 수장됐다.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 것임이요'라며 인간에게 주어진 여덟 가지 복을 가르치신 언덕도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있다.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천 명을 먹인 곳도 바로 이 근처다.
예수님이 많은 시간을 보내신 가버나움도 갈릴리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하인과 베드로의 장모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셨다. 예수님의 제2 고향이라고도 불린다. 당대 가버나움은 가장 번화한 동네 중 하나였는데 그만큼 악도 창궐했다고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보였음에도 그다지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의 복음과 이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가버나움이 결국 멸망할 것을 예언하셨고 실제로 기원후 6세기 페르시아 침략으로 폐허가 되고 만다. 그 이후로 가버나움은 저주받은 땅처럼 되어 사람의 흔적이 끊겼다고 한다. 지금도 가버나움이라는 단어는 아랍 문화권에서 저주받은 땅, 지옥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쓰인다.
갈릴리 호수에서 빠뜨릴 수 없는 명물이 성 베드로 물고기(St. Peter's Fish)다.
성 베드로 물고기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 나오는 베드로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가버나움에서 성전세 반 세겔을 낼 것을 요구받았다. 예수님은 자신은 하늘에 속한 자이기에 성전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제자들까지 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시험에 들 수 있다고 판단하셨다. 그러면서 갈릴리 호수에 가서 낚시로 먼저 잡는 물고기 입에 돈이 한 세겔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세금을 내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 베드로 물고기는 갈릴리의 명물이 됐다.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는 식당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식당에서 파는 성 베드로 물고기는 틸라피아(Tilapia)라는 민물고기다. 틸라피아는 북미 지역에서 굉장히 대중적인 생선 중 하나다. 양식하기도 쉽고 번식력도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다른 맛도 없어 적당히 요리하기도 편하다. 부드럽고 단단한 질감의 이 흰 살 생선은 하도 힘이 좋아 우리나라에서는 역돔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민물고기 역돔을 돔처럼 회나 초밥으로 섭취하다 비위생적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한 생선이다.
갈릴리 호수 근처 식당 대부분은 성 베드로 고기를 대충 튀겨서 감자튀김이랑 곁들여 내버린다. 관광객을 상대하니 바가지도 씌운다. 그래도 일부 제대로 된 레스토랑은 틸라피아를 요리로 만들어 내놓는다. 단순한 생선 튀김이 아니라 제대로 된 요리다. 이런 식당을 찾아가면 굉장히 만족스러운 틸라피아 요리를 먹을 수 있다. 과연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이렇게 잘 차려 먹었을지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성 베드로 물고기로 알려진 또 다른 생선은 우리나라에서 달고기라고 부르는 존 도리(John Dory)다. 사실 이 생선은 해수에서 살기 때문에 베드로가 잡았다는 그 물고기는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표면에 동전 무늬가 있어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2천년 전 예수님의 기적이 넘쳐났던 호수는 이제 명물 물고기 요리와 조망 좋은 리조트가 가득한 관광지가 됐다. 어쩌면 황량한 이스라엘 땅 가운데 만년설을 수원으로 하는 호수가 수천년간 유지되고 번영하고 있단 것 자체가 현대에서 볼 수 있는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성지순례가 아니더라도 느긋하게 호수를 바라보며 휴가를 즐길만한 곳이다. 수천년 째 유지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적으로 여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