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를 걷다 보면 여기가 중동의 한 나라인지 아님 어느 선진국의 태평양 연안인지 헷갈릴 정도다. 전기 자전거가 즐비해있고 곳곳에 보이는 클럽과 펍에서는 젊은이들이 활기찬 모습을 보인다.
텔아비브는 전 세계적인 인터넷 기술(IT) 스타트업의 요람이다. 이 젊은이들은 낮에는 스타트업, 또는 구글 캠퍼스, MS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출근한다. 상당히 서구적인 문화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해피아워(happy hour)를 활용한 네트워킹 파티를 모집하기도 하고 유관 기술 인력들끼리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창업 국가답게 자기 사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부지기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베이가 있다면 이스라엘의 '실리콘 와디(Silicon Wadi)'가 있다. 와디는 아랍어로 마른 계곡이란 뜻으로 우기에만 물이 흘러 홍수가 일어나는 지형이다.
우리에겐 실리콘 와디가 친근한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역사는 무려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이스라엘의 무선 통신 기기 회사인 ECI 텔레콤을 비롯해 전자 업체인 엘론(Elron Electronic Industries) 등이 이때 텔아비브에 설립됐다. 이후로도 꾸준히 성장을 해 현재는 약 6천 개의 스타트업이 이스라엘에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스타트업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은 자생적으로 더 크지 못하고 이내 글로벌 기업에 팔리는 일이 다반사다. IVC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된 자금만 64억 7천만 달러로 2017년 대비 17%나 늘었다. 2013년과 비교해서는 2배로 급증했다. 투자를 받았단 얘기는 이들 회사의 지분이 그만큼 해외로 팔려나갔단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비게이션 스타트업 '웨이즈'다. 이 회사는 지난 2013년 구글에 약 1조 원의 가치를 받고 매각됐다. 또 2011년 미국의 아마존은 이스라엘 칩(chip) 디자인 회사인 아나푸르나랩스를 3억 7천만 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자꾸 팔려나가는 데에 일각에서는 아쉬워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기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의 기업투자 벤처캐피털인 '삼성넥스트'는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되고 이어 2016년 텔아비브에도 사무실을 개소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 뉴욕, 실리콘밸리, 독일 베를린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삼성전자의 최고 기술 책임자(CIO)인 데이비드 은 사장이 텔아비브 연구소를 방문하고 현지 스타트업에 신규 투자를 모색하기도 했다.
앞서 삼성전자도 2019년 초 카메라 기술 스타트업인 코어포토닉스를 5천500만 달러, 약 1천700억 원을 주고 인수했다.
이스라엘이 이 같은 스타트업 대국이 된데에는 지리적 한계와 역사,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전후(戰後) 생겨난 국가인만큼 모든 것이 결핍됐다. 심지어 자원도 없다.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만한 땅의 이스라엘은 영토 60%가량이 사막이다. 그런 물적 결핍이 지금의 창업 국가를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가진 것이라고는 계속해서 유입되는 인적 자원밖에 없었다. 나치 탄압으로 망명한 유럽계 유대인들을 비롯해, 1991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한차례 더 대규모의 고학력 유대인 인구가 유입된다.
믿을 게 인력밖에 없으니 국가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요즈마펀드(Yozma Fund)가 창업 문화를 이끈 동력이 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3년 벤처캐피털인 요즈마펀드를 설립해 초기 기업을 육성하고 투자를 활성시키려고 했다. 출범 3년 후에 요즈마펀드가 투자한 자금은 2천만 달러에 이르게 될 정도로 성장했다. 이후 요즈마펀드는 펀드를 3호까지 만들며 투자를 확대했다. 누전 투자 자금만 2억 2천만 달러에 이른다. 또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로 엑시트를 한 기업만 15개로 대부분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거나 미국 기업에 인수됐다.
제도는 일종의 날개다. 날갯짓을 하는 건 창업가 개개인이다. 이들이 날 수 있던 데에는 그들의 창업가 정신과 문화가 바탕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후츠파가 이스라엘의 기업가 정신이라고 하는데, 의미상 다소 왜곡된 점이 있다. 후츠파는 뻔뻔함, 싸가지 이런 뜻이라 이스라엘인에게 후츠파가 어쩌고 운운하면 상당히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그보다는 교육법에 주목해야 하지 않나 싶다. 유대인은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하르부타(Chavrusa)' 교육을 받는다. 하르부타라는 단어는 친구, 동역자라는 뜻으로 부모와 자녀, 또는 친구들끼리 주제를 두고 끊임없이 토론을 하면서 분석하고 사고력을 기르는 랍비들의 교육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대인 교육법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토론식 교육 문화로 유대인들은 창의성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었다. 신사업이나 기술 아이디어가 발전하는 건 당연지사다. USB, 드론 등이 모두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은 닮은 점이 많다. 영토도 작고 자원도 없으며 가진 거라고는 사람밖에 없다. 정책적으로는 둘 다 기술 육성에 힘쓰는데 아웃풋이 다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위에서 아래로 찍어내는 식이 대부분이다.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을 새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포하고 정책을 입안한다고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게 아니다. IT,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정부가 거창하게 외치는 것에 비해 규제가 너무 많다고 하나같이 읍소한다. 관계 부처에서 규제 혁신을 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의견을 수립하고 해소해나가고 있지만 포지티브(Positive) 규제의 틀이 계속되는 이상 한계는 계속 생긴다. 업계에서 네거티브(Negative) 규제를 요구하는 이유다. 개개인 측면에서도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는 탑다운(top-down)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자율성과 비상식적인 창의성을 허용하고, 질문과 이탈이 되바라진 행동으로 비치는 게 아닌 경쾌한 호기심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