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의 한 동네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 양식의 건물들로 만들어진 '하얀 도시(White City)'다.
로스차일드 거리에 도착하면 길을 걷는 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하얀 건물들이 세련된 매너로 당신을 맞이한다. 매끈하게 빠진 디자인은 70년 전의 스타일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현대적이다. 뽀얀 벽을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금이 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각 집마다 발코니가 작게 붙어 있어 일본의 맨션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 툭 튀어나온 발코니로 베니스의 줄리엣이 나와 로미오를 찾을 것 같기도 하다.
하얀 도시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독일계 유대인들이 만든 동네 바우하우스 건축 양식을 반영한 4천여 개의 건물들로 구성돼있다. 바우하우스는 독일어로 '집'과 '짓다'를 합친 말로, 원래 1919년에 독일에 설립된 예술, 디자인, 건축 학교 이름이다. 나치 점령으로 1933년 14년 만에 폐교했으나, 그 영향력은 현대 건축과 디자인에 아직도 남아있다. 어떤 환경에도 어울려 인터내셔널 스타일이라고도 불린다.
바우하우스 건축 양식의 특징은 간결성이다. 기존의 바로크나 르네상스 건축 양식은 장식에 집중했으나 바우하우스는 단순한 선과 면, 그리고 기능성을 강조한다. 건축의 새로운 사조였다.
건물의 요소마다 기능이 담겨 있다.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장식은 이 건축 양식과는 상극이다. 간결함과 기능성이 강조돼 대중적이면서도 적은 비용으로 생산 가능하다. 이 때문 독일의 노동 계층에서도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런 대중성과 합리성은 텔아비브라는 신생 도시를 짓는 데에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해체하면서 이곳에서 공부한 독일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1909년 새롭게 생긴 영국령 텔아비브에 제대로 된 주거 시설이라고는 없었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들 인구가 점차 늘어났고 1930년대 초에는 유럽에서 망명한 유대인 인구가 4만 6천 명에 이르게 된다.
덕분에 텔아비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바우하우스 건축 양식의 건물들을 두게 됐다. 전쟁이 낳은 또 다른 예술이다. 다만, 텔아비브의 하얀 도시는 독일에서 탄생한 본 형태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지중해 기후에 맞게 재탄생해서다.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길고 좁은 발코니다. 발코니는 아랫집을 위한 차양 역할을 하면서도 시원한 저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줬다.
또 창문을 작게 만들어 강렬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은 줄이면서 계단 쪽으로 충분히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이런 구조 덕에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다. 해풍을 배기통에 잡아두고 기둥을 세워 바람이 건물 밑으로 빠지게 설계했다. 바람의 순환으로 건물 전체가 시원해지도록 위해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바우하우스 빌딩은 1990년대 복구 작업 및 보존 작업을 거친 건물들이다. 기존의 건물들은 자재들이 대체로 독일에서 공수된 것이라 유지가 어려웠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텔아비브-욥바 지방자치단체는 하얀 도시 보전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이후 이 독창적인 동네는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건축물 기행이 되지만,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텔아비브 건축물 투어'를 찾아 신청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진행되며 참가비는 25달러 정도다. 가이드와 함께 하얀 도시를 산책하면서 바우하우스 건축물의 특징과 주요 건물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된다. 혹은 '바우하우스 센터(Bauhaus Center)'에 방문하면 각종 기념품을 사거나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여기서는 바우하우스 관련 제품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다양한 소품들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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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도시 계획은 1925년 스코틀랜드 사회학자이자 지질학자, 생물학자인 패트릭 게데스(Patrick Geddes)가 제안했다. 패트릭 게데스는 원래 생물학자였으나 이후 '도시 진화론'을 주창하며 사회학자로 더 유명해졌다.
그는 텔아비브 도시 계획 마스터플랜을 작성하도록 위임받고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2개의 도로와 4가지 형태의 거리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중 한 지역이 북쪽에 자리한 하얀 도시다.
By Patrick Geddes (1854-1932) - Cover of Geddes’s 1925 report,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8858642
하얀 도시뿐 아니라 다른 건축물들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도심에 있는 유대교 회당(The Great Synagogue)은 Yehuda Magidovitch라는 건축가가 처음 설계했다. 유대교 회당의 건축은 1922년부터 시작해 1926년에 완성됐으며 1970년에 한차례 개축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성당 같은 존재다. (유명 인사의 결혼식을 하는 명소기도 하다. ) 현재 이 지역은 가장 핫한 클럽과 바들이 가득하다. 이에 유대교 회당도 종교적 기능보다는 문화적 가치가 더 주목받게 됐다. 1940년대에는 유대인들의 무기 저장고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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