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는 세계에서 가장 게이스러운 도시라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 도착한 날은 안식일이 시작하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안식일을 보낼까. 직접 현지에서 안식일 경험하고 싶던 우리는 구글에서 열심히 안식일 체험 투어가 있는지 알아봤다.
있다. 금요일 저녁에 유대인 한 가정집에서 모여 기나긴 저녁을 먹으면서 와인도 마시는 그런 모임이다.
근데 주최자가 조금 특이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제냐와 미셸의 안식일 체험.' 동성의 이름 두 개가 박혀있다. 뭐지 싶어서 클릭해본다. 아름다운 여성 두 명이 활짝 웃으면서 반긴다. 손 위치가 이상하다. 한 명은 다른 한 명 어깨에, 다른 한 명은 상대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이 행사는 제치기로 했다. 그럼 유대인 전통 요리 실습을 찾아보자. 토요일 오전에 진행되는 행사를 다시 뒤적였다. 또 찾았다. 이번에는 '브래드와 제임스의 전통 유대 요리'란 이름이다. 클릭해보니 훈훈한 백인 남성 두 명이 다정하게 붙어 있다. 중동의 요섹남들인가. 이 동네 정말 범상치 않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주는 이미지와 달리, 최대 도시 텔아비브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진보적인 도시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형성되어 있다. 세계적 규모의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 축제도 텔아비브에서 열린다. 미국의 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텔아비브를 세계에서 가장 게이스러운 도시로 뽑기도 했다. (https://www.bostonglobe.com/lifestyle/travel/2016/03/17/welcome-tel-aviv-gayest-city-earth/y9V15VazXhtSjXVSo9gT9K/story.html)
성경의 나라에서 오히려 세계적인 동성애 축제가 열린다니 생경하다. 텔아비브에서 매년 열리는 게이 프라이드는 중동에서 가장 큰 성 소수자 축제로 알려져 있다. 한 해 참가자만 수십만 명에 이르고 미국이나 유럽 지역에서도 온다. 심지어 키파를 쓴 유대인조차도 이 축제에 참여한다.
이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텔아비브 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축제는 이미 25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일종의 관광 상품이 된 셈이다. 텔아비브시는 1997년부터 재정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도시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레 LGBTQ 인구도 늘어났다. 현재 텔아비브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성소수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전체로도 10%에 이른다.
심지어 올해 새로 임명된 아미르 오하나(Amir Ohana) 법무부 장관도 동성애자다. 그는 자신의 11번째 파트너와 사실혼 관계에 있으며 대리모를 통해 자녀도 둘이나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으로 만들어낸 강경하고 고압적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핑크 워시(pink wash) 전략을 쓰는 거라고 꼬집기도 한다. 즉, 외교적 비난을 중화하기 위해 문화적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동성애를 지탄한다. 그런 성경의 나라가 오히려 지금은 동성애를 포용하고 심지어 확산하는 데에 국가 차원에서 나선다. 병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문화가 혼재한다. 어떻게 보면 동성애를 비롯해 성경과 종교, 예수님과 여호와까지도 이미 이 나라의 문화적 자본이 되어 버린 건 아닌가. 조금 세모난 눈으로 보게 된다.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수도로 간주된다. 인구 절반 가까이가 이 지중해 연안 도시에 살고 있다. 1880년대 유대인 이주자들이 텔아비브 욥바(야파, Jaffa)를 대체할 곳으로 찾았지만 점차 규모가 커졌다. 중동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기도 하다.
텔아비브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을 뜻하는데 이는 테오도르 헤르츨이 쓴 ‘오래된 새로운 땅’을 히브리어로 번역했을 때 영국계 유대인 작가이자 시오니즘 지도자였던 나훔 솔콜로프가 붙인 이름이다. 소콜로프는 에스겔 3장 15절에서 이 같은 이름을 따왔다.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겔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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