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어딜 가도 코셔(Kosher)라는 표지가 붙은 레스토랑을 볼 수 있다. 슈퍼마켓에 가도 마찬가지다. 코셔 표지는 어디든 있다. 벤구리온 국제 공항 터미널에서도 코셔 인증 올리브유나 커피를 살 수 있다. 대체 코셔가 뭐길래.
코셔란 유대인들에게 '먹어도 되는 음식'이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도 있다는 얘기다. 코셔는 성경에 근거해 적절한 음식들로, 적절함과 부적절함을 나누는 식사법 자체는 '카슈루트(Kashrut)라고 부른다.
유대인에게는 고기, 가금류, 해산물, 유제품 등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따로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구약성경 레위기와 신명기에 기록됐다. 작성 시기는 약 1500년 전이라고 하니 3500년가량 된 식문화다. 심지어 당시 유대인들은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불모의 땅에서 40년간 헤매고 있으면 뭐든 먹는 게 급할 텐데. 민족 정체성이 강한 유대인들은 수쳔년이 지나서도, 디아스포라가 되어서도 여호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생활에서 지켰다. 현재 이스라엘 어디를 가도 코셔 인증 마크를 단 레스토랑을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지켜야만 하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식문화다.
밥 한번 먹기 참 까다롭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젤라토는 된다. 에스프레소는 되지만 카페라테는 안된다. '염소 새끼를 제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다. 동물의 젖과 고기를 함께 먹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 때문에 햄버거는 있어도 치즈버거는 없다. 고기 패티에 치즈를 올리면 젖과 고기를 함께 먹는 셈이 되서다. 고기를 먹었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지만 유제품을 먹을 수 있다.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구약성경의 첫 다섯 챕터인 토라(Torah)는 무슬림들도 보는 경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발굽이 갈라져있고 되새김질이 가능한 동물만 깨끗한 동물로 판단한다. 이들 고기만 먹을 수 있다. 이에 소나 양, 염소는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되지만 돼지는 되새김질을 하지 못해 부정(不淨)한 동물로 취급된다.
성경에서 허용한 고기라고 다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특정 방식에 따라 도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따로 도살 전문가 쇼헷(Shochet)이 필요하다. 쇼헷이 도살하지 않은 고기는 코셔가 될 수 없다. 또 쇼헷은 할레프(Challef)라는 특정 칼로 정경맥을 한 번에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 피를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카셔링(kashering)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처음 30분간 상온의 물에 담가서 핏물을 빼고 소금에 육류를 절여 1시간 정도 두는 방식이다.
까다로운 유대인들은 일반적인 치즈도 코셔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치즈를 응고시킬 때 사용하는 효소가 짐승의 위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기나 유제품이 아닌 채소, 곡식, 과일 등은 함께 조리되는 재료에 따라 분류가 달라진다. 예컨대 유제품과 같이 조리되면 유제품으로 취급된다. 밀가루를 버터에 볶은 뒤 우유와 끓여 수프를 만들었다면 이는 유제품이다. 밀가루로 만든 빵에 구운 양고기와 야채를 곁들여 먹으면 육류를 먹은 것으로 취급된다.
해산물 중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생선만 먹을 수 있다. 갑각류나 장어, 문어처럼 지느러미가 없는 생선은 비코셔 식품이다.
조류 중엔 독수리나 매, 올빼미 등 맹금류나 황새, 백조 등은 금지된다. 주로 닭이나 오리, 칠면조 등이 코셔 식재료로 인정된다.
심지어 가정에서는 코셔용 조리 도구와 비코셔용 조리 도구를 따로 두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식습관의 목적은 유대 민족을 다른 민족과 분리해 거룩하게 유지하겠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이 선택한 거룩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식사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유대인 남자들은 13세가 되기 전에 무조건 할례, 즉 포경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 역시 거룩함, 구별됨의 일환이다.
미국에서는 하인즈(Heinz) 케첩이나 코카콜라, 립톤 등도 코셔 인증 제품을 따로 내고 있다. 또 영국의 유통기업 테스코는 상품의 40%를 코셔 제품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이미 대중적인 식사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히 맘카페를 중심으로 코셔 인증을 받은 소금, 오일 등이 인기다. 한국 식자재 회사에서도 코셔 인증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소금, 올리브유는 물론 오트밀 등도 나온다. 코셔가 더 이상 종교적인 식사법이 아닌 품질 인증 방식이라는 방증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나라 식자재가 코셔 인증을 받으면 그만큼 세계 시장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의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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