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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Oct 28. 2019

엄마는 육아가 희생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식물인간이 되어간다

육아가 시작되고 기쁨과 함께 무거운 우울감도 생겼다. 이 우울감은 꽤나 무거워서 평소에는 잘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한번 수면 위로 드러나면 존재감이 엄청나다. 평소 나의 마음은 호수 같다. 근데 우울감이란 괴물이 사는 호수다. 나타나면 순식간에 폐수 처리장처럼 되어버린다. 퀴퀴하고 구린내가 진동해서 나조차 내 마음을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녀석 때문에 나의 양육 조력자들도 가끔씩 크게 곤란해진다. 한밤중 내 우는 소리에 남편은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아기한테 들릴까 걱정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눈물과 목구멍을 먹먹하게 만드는 설움을 참기란 쉽지 않다.


우리 아기는 대체로 순한 편이라 아기 때문에 힘든 것은 별로 없다. 문제는 내 욕심이다.


직장 생활을 8년간 하며 쌓아온 인맥이 결혼, 육아와 동시에 파쇄되는 느낌이다. 내가 너무 가볍게 인간관계를 형성했나 싶으면서도 아쉬움이 크다. 몇 주 전 내 생일에는 작년이나 재작년보다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만 생일 축하 연락을 줬다. 이런 거에 집착하면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줄어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생일 케이크를 8개씩 잘랐던 나인데. 올해는 그 흔한 생일 축하 기프티콘도 몇 개 없다. 내가 필드에서 뛰지 않으니 다들 날 필요 없는 존재로 생각하나. 스스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야금야금.


82년생 김지영이 꼭 이런 얘기라지. 지영이는 육아로 다 잃었다고 하지. 그 유명한 대목은 요즘 내 뇌를 지배한다.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그래. 불안해 미치겠다. 내 회사 동기들은 더 이상 내가 있는 동기 카톡을 쓰지 않고, 일로 만난 사람들 중에 남은 자들은 아마 5%도 되지 않을 거다.


복직을 하면 나는 30대 중반에 회사 내에서 7년 차다. 근데 인맥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나의 능력은 다시 수습사원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다음 휴가에는 화산을 보러 가겠단 계획은 마음에 고이 접어둔 지 오래. 이제는 아기와 괌이나 가야지 생각한다.


행복하자며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살면서 1년 넘는 시간 언제 또 쉬어보겠니. 자기 계발하자.


근데 그게 말이 쉽지 자기 계발은 아무나 하나. 오래간만에 공부라도 하려고 하면 아기는 운다. 재워달라고 안아달라고. 낮잠 교육 밤잠 교육을 해야 한다는데 그것도 내가 시켜야지. '그래 육아하라고 육아휴직했으니까 육아하자' 싶다가도 내 안에 지영이가 또 울며 외친다. '사람들이 너보고 맘충이래'


뭐 어쩌라고. 이런저런 답답한 마음이 켜켜이 쌓였다. 굳은살처럼. 빨리 긁어내는 편이 좋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그나마 나는 친정 엄마가 근처에 살아서 거의 매일 도와주러 온다. 다른 독박 육아 엄마들에 비해 나은 편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명문 사립대 국문과를 나와 교단에도 수년 있었고, 사회생활도 오래 했다. 누구보다 인문학, 철학, 심리학에 조예도 깊은 편이다. 딸이 사회에서 훨훨 날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 같아서 무서워. 나만 희생당하는 거 같아.


아 우리 남편은 잘 도와주는 편이다. 그런데 바깥일을 하니 주양육자가 내가 되는 건 당연하다. 그 부분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희생은 나의 커리어적인 희생이다.


암튼 엄마한테 그렇게 읍소했다. 나의 모든 것이 희생되는 거 같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소리 지른다.


그게 무슨 희생이니? 엄마가 됐으면 그렇게 사는 거야. 너만 그런 게 아니고 나도 그랬고 우리 모두 다 그렇게 살았어.

어안이 벙벙하다. 뭐라고?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엄마가 되어서 아기 보는 게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그건 기쁨이야. 희생이라고 생각할 거면 복직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아. 그렇구나. 엄마들은 다 이렇게 사는구나. 살았구나.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통념이 이데올로기의 억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생산자가 엄마였구나.


그냥 나한테 필요했던 말은 '그렇지 불안하지. 힘들지?  엄마가 되는 게 힘들어. 복직하고 더 열심히 일해보자.' 이런 말이었는데. 결국 그 말은 듣지도 못한 채 나약해빠진 내 정신 상태만 훈계당했다.


나도 육아 그 자체로는 행복하다. 낳아보면 알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해주니 그만큼 행복한 것이 없다. 나 역시 나의 분신과 같은 우리 딸을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사랑한다.


그거랑 별개로 여태까지 '나'로 살았던 시간과 이력이 있지 않는가. 차곡차곡 쌓이던 사회 속의 '나'는 순식간에 식물인간이 됐는데. 갑자기 식물인간이 된 나는 희생된 게 아닌가?


이런저런 내 생각을 정리해 말하자 엄마는 당신이 하루에 몇 시간 아기를 봐줄 테니 그 시간 동안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하라고 한다. 원래부터 해온 얘기긴 하다. 엄마는 나의 자기 계발을 항상 지지했으니까.


하지만 육아가 희생이 아니라고,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는 말은 잊히지 않을 거 같다. 나는 우리 딸한테 말해줘야지. 육아는 큰 희생이라고. 각오하고 아기를 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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