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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Oct 30. 2019

인생을 바꾼 두 줄

여자의 인생, 2번째 변곡점


그 해 늦가을은 유달리도 우울했다. 별것도 아닌 것에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존재 자체에 대한 답 없는 질문만 계속 던져댔다. 2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울어댄 것 같다.


감정이 쳐지니 몸도 처질 수밖에 없다며 겨우겨우 몸을 이끌고 출퇴근을 반복했다. 마치 일부러 우울함 안에 내가 잠겨 있는 모양새였다.


아침 7시까지는 출근을 마쳐야 하는데 6시에 겨우 일어났다. 씻는 둥 마는 둥, 화장을 하는 둥 마는 둥 겨우 회사에 도착해도 아침잠이 쏟아진다. 퇴근 후 각종 모임에도 나갈 수가 없다.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지난 5년간 밤 10시 전에 집에 온 적이 거의 없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패턴이 점점 마비가 되고 있다. 제때 출근하기도, 누구와 통화를 하기도, 사람을 만나기도 싫은 나날들이었다.


그날도 똑같이 6시쯤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전날 오래간만에 12시가 다되도록 저녁 자리를 지키며 술을 진탕 마셨는데도 말이다. 새벽엔 좀처럼 잠에서 깨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눈을 비비며 말을 한다.


'어제 꿈을 꿨어. 어떤 아이가 나왔는데, 얼굴이 검은 거야. 근데 걔가 우리 애래.'


'흑인이야?'


'그건 아니고 그냥 피부가 어두운 아이였어. 엄청 똑똑해. 내가 회사에 갔다 왔는데 아이가 반듯하게 앉아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기계처럼 씻고 다시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방금 했던 임신 테스터를 꺼내 보였다. 빼도 박도 못하고 2줄. 양성이다.

결혼 7개월 만에 태아가 내 자궁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모든 변화는 그 2줄에서 시작됐다.


갑자기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을 배려하고 모든 것을 가족 위주로 생각하게 됐다. 연말까지 아기가 생기지 않거나, 각자 커리어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다 내려놓고 부부 세계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아기가 생긴 덕분에 우리는 다시 직업 전선에서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책임져야 할 입이 하나 더 늘어나니 말이다.


편의시설이 밀집한 서울 한복판에서 살던 우리는 갑자기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 가게 됐다. 복직 후에 아기를 친정에 맡기려는 의도에서다. 내 친정 부모님이 몇 해 전 이사 가면서 우리도 갑작스럽게 경기도민이 됐다. 둘 다 아직도 각자의 서울 고향 동네를 그리워한다. '신도시가 살기 참 좋아'라고 말하면서도.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됐다. 남편은 가고 싶던 회사에 합격했지만 지방에 있단 이유로 고사했다. 나는 회사에서의 인사 평가를 포기하고 커리어 '도약'이라는 단어는 당분간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새로운 꿈들을 꾸기 시작했다. 부부 모험가를 자처했던 우리는 아기와 함께 내년에 휴양지로 여행 갈 계획을 하면서 재밌어한다. 지난 휴가 때는 몽골 고비 사막의 게르에서 자던 우리인데 지금은 아기와 함께 갈만한 호텔, 리조트를 검색한다. 봉사활동은 교회에만 국한했던 내가 미혼모, 고아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기의 이름으로 부모 없는 아기들을 위해 기부한다. 아기에게 사랑을 쏟다 보니 버려진 아기들이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절절히 느껴져서다. 언젠가 우리 아기가 분별력이 생길 정도로 자라나면 같이 그런 단체로 봉사활동을 가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다. 


아기가 혼자서 노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파서 둘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타인을 위해 내가 한번 더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 대견하다. 


임신은, 출산은, 육아는 인생의 정말 많은 부분을 바꾼다. 가치관, 삶의 지향점도 수정된다. 어색하지만 서로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점점 적응된다. 3명이 각자 성장하고 서로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나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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