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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Nov 03. 2019

독박 육아는 고문이다

임신 소식을 회사에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0.1톤쯤 되는 거구의 남자 선배가 말을 걸었다.


"야 임신해서 일하기 힘들지."

"괜찮습니다."

"졸리고 힘들잖아."

"네 뭐 좀 힘듭니다."

"아기 언제 나온다고?"

"8월 예정입니다."

"애 보는 건 2천 배쯤 더 힘들다. 일 끝나고 집에 가면 우는 애 달래야 해. 또 재워야 해. 주말은 완전 애한테 헌납해야 해. 이제 너란 존재는 없는 거야."


워낙 과장이 심한 선배라 그러려니 했다. 항상 일이 힘들다고 하면서 열심히 하는 선배였으니까. 이제와 생각하면 그가 과장을 했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친절하게도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모두 쓰라고 한 덕분에 1년 3개월간 전업주부로 살게 됐다. 조금 일찍 복직할 생각도 있었는데 말이다.


육아하려고 육아휴직 한 거니까 열심히 애나 키워야지라고 생각했다. 도와준다는 친정 엄마한테 '내 애는 내가 키워'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이자 내가 부모가 되기 위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애 키운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때 그 패기는 무식이 부른 치기였다.


독박 육아는 고문이다. 엄살이라고 하지 말라. 100일 전 아기 키워본 엄마라면 공감할 것이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못 자고, 못 먹고. 전형적인 고문의 형태다. 아기의 미소만이 보상이다. '엄마가 내 세상의 전부야'라고 초롱초롱 바라보는 그 눈빛이 보상이다. 물론 그 보상은 너무나 달콤하다. 그 보상을 위해 기본적인 의, 식의 문제는 경시되기 일쑤다. 아기를 돌보는 중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아기가 우니까. 아기 엄마라면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본 경험은 한번 이상 있을 거다.


초반에는 남편이 퇴근하면 아기 목욕을 시켜줬다. 50일쯤 지났을까, 산후조리가 어느 정도 된 이후는 그냥 내가 시키기 시작했다. 퇴근이 늦어지면 아기 목욕 시간도 지연되고 잠드는 시간이 들쭉날쭉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유는 일절 먹이지 않는 완모(완전 모유수유)로 100일 가까이 키우고 있으니 밤중 수유도 당연히 내가 도맡는다. 분유를 먹이면 가끔 남편한테 밤에 수유를 부탁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쉽지 않다. 밤에 아기한테 먹여야 할 젖을 빼내지 못하면 터지기 직전의 물풍선처럼 가슴이 부푼다. 또 모유는 일종의 주문 제작 방식이라 아기가 먹는 만큼  새로 생성된다. 즉 완전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가 분유를 섞여 먹이면 뇌에서 필요한 모유량을 적게 인식하고 생산을 줄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새벽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일어날 수밖에 없다. 모유 수유 아기의 경우 최소 6개월 정도 밤중 수유를 해야 한다고 하니 고행길도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온 셈이다.


신생아 때는 차라리 쉬웠다. 그땐 산후 도우미도 있고 아기 일과가 먹고 자고 먹고 자고의 반복이었다. 아기의 낮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이제는 하루에 3-5시간 낮잠 자는 게 전부다. 그 낮잠도 어르고 달래야 겨우 잠든다. 잠을 자기 위한 시간이 또 30분에서 한 시간씩 들어간다. 때를 놓쳐 졸려 짜증 날 지경에 이르면 답도 없다. 짜증 가득한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를 달래는 데에 또 시간이 들어간다. 졸려서 울 때는 지쳐 쓰러져 잘 때까지 안아 주는 수밖에 없다.


달랠 때만 안아주는 게 아니다. 트림시킬 때도 안아줘야 하고 놀다가 심심해하면 또 한 번씩 안아서 세상(이라고 쓰고 집안이라고 읽는다) 구경도 시켜줘야 한다. '이건 꽃님이야. 이건 엄마 아빠 결혼식 사진이야.' 알아들을 리 만무한 아기를 안고서는 혼잣말을 시작한다.


어깨는 굽고 승모근은 치솟는다. 지난 32년간 무거운 것이라곤 찻잔 밖에 들어본 적이 없는데. (물론 그럴리는 없다.) 고생이라고는 몰랐던 손목이 급속도로 노화된다. 손목이 이렇게 아플 수 있다니. 아기를 들어 올리는 데 장미란 선수처럼 나아간다. 고작 5.5kg에 용기와 기합이 필요할 정도다.


모두가 늘어지는 새벽 3시. 손목과 어깨, 허리, 골반 근육도 이제 겨우 쉬려고 느슨해지는데 아기가 슬금슬금 깨려고 한다. 곧 젖 찾는 소리가 난다. 쩝쩝대는 소리,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소리. 어미 된 입장에서 어찌 새끼를 굶길 수 있겠는가. 졸린 눈을 비비고 아기 침대로 다가간다. 아기와 눈이 마주친다. 아기가 배시시 웃는다. '배고팠어 우리 아가? 맘마 먹으러 가자.' 휴식 모드로 들어가던 손목과 어깨, 허리, 골반 근육이 다시 긴장한다. 아기를 번쩍 들어 올려야지. 안전하게 안아줘야지. 그렇게 관절들은 하루도 제대로 쉴 날이 없다. 오십견 예약이다.


아기에게도 혼자 놀기 스킬이 있기는 하다. 근데 그 지속 시간은 기껏해야 30분 정도다. 아기마다 다르겠으나 우리 아기는 긴 편이라서 30-40분이라고 알고 있다. 혼자 놀 때는 모빌을 보거나 초점책, 딸랑이 등을 갖고 논다. 엄마에게 잠시 주어진 휴식 시간이다.


이때 엄마는 빠르게 식사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린다. 빨래를 돌리거나 개기도 한다. 모든 것은 30-40분 내로 이뤄진다.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을 활용해도 되기는 하다. 하지만 많은 아기들이 '등 센서'라는 게 있다. 낮잠은 절대 누워서 자지 않는다는 거다. 등을 바닥에 대면 '애앵'하고 울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또 아기를 안고 재운다. 배 위에 아기를 올려놓고 재우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은 핸드폰이 전부다. (그렇게 내 브런치가 시작됐기도 하다)


아기가 좀 더 크면 누워서 자기도 한다. 근데 그때는 이유식을 먹을 시기가 된다. 아기 엄마는 아기 낮잠을 재우고 이유식 준비를 한다. 일주일치를 몰아서 하거나 아예 사 먹이는 엄마들도 있다. 엄마 나름의 생존 방식이다.


혼자서 아기를 보기 시작하면서 식탁에 제대로 앉아서 막 지은 밥과 반찬, 국을 차려 먹어본 적이 언제였나. 이 부분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지어준다고 치자. 아기를 돌보며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다. 살림 젬병인 나에겐 그렇다. 밑반찬이나 꺼내 먹고 그럴 여유도 없을 때는 국만 후딱 데워서 밥을 말아먹기 일쑤다. 아기가 징징대는데 내 배도 곯때는 쟁반에 후다닥 먹을 것을 차려서 아기 옆에 가서 3분 만에 먹어 치운다. 엄마 껌딱지 딸을 둔 우리 올케는 1년 동안 제대로 점심 한번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올케가 눈 앞에서 사라지면 아기가 대성통곡을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말할 대상이라고는 아무도 없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나는 꿀 먹은 벙어리다. 아기와 얘기를 하기는 한다. 별 얘기를 다한다. 옹알이를 하고 있으면 '응 그랬어? 그랬구나~ 재밌었어?'라며 혼잣말을 하고 아기가 무척 신나 보일 때는 같이 '꺄~ 재밌다~ 우와~~'하고 놀아준다. 미친 여자가 따로 없다. 아기가 하루 종일 기분이라도 나쁘면 나 역시 좌절한다. 같이 신나게 얘기할 대상은 없고 계속 안고 달래줘야 하는 60cm짜리 꿈틀이만 있을 뿐이다.


배앓이가 심했던 시기가 있다. 배에 가스가 차서 아기가 아픈 건데 하루 종일 운다. 안아도 울고 눕혀도 운다. 수유할 때만 잠깐 울음을 그친다. 수유를 마치고 제풀에 지쳐서 자다가 또 운다. 계속 운다. 이럴 때는 엄마도 울게 된다. 아기가 아파하는데 내가 그 고통을 나눠서 아플 수 없으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달래 보는데 아기는 계속 아프니까. 밤에 배앓이라도 하면 남편한테 미안해서 우는 아기를 안고 거실이든 아기방이든 다른 곳으로 도망간다. 아기도 울고 피곤한 나도 울고 아빠도 아마 울고 있었을 것이다. 졸린데 잘 수가 없으니.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싶었다. 씻기라도 제대로 씻고 싶었고 옷이라도 제대로 갖춰 입고 싶었다. '아기 잘 때 하면 되지'라고 타박 주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아기 잘 때는 나도 자고 싶다. 새벽에 길어야 3-4시간 쪽잠 자는데 대체 나는 언제 자냐.


친정 엄마가 지원군으로 등판했다. 초반에는 주 5일, 최근에는 주 3일 정도 와서 점심을 차려준다. 이래서 친정 가까이 사나 보다. 친정 엄마와 같이 육아를 하면서 부딪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적어도 밥 한 끼는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됐다. 엄마가 반찬과 국을 맡아서 해주니 남편 저녁상도 차려줄 수 있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냥 차리고 국을 다시 데우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주말에는 남편이 거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해 준다. 청소부터 반찬 만들기까지. 그러니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전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까. 이런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애 키우는 엄마들은 엄마가 아니라 '위대한 어머니'라고 추대받아야 마땅하다. 아파트 정문에 송덕비라도 세워주든가. 과하다 싶으면 '훌륭한 어머니상'이라고 새겨진 상패라도 줘야 한다.


아기가 7시간 이상 자는 통잠을 자는 때가 곧 온다고 한다. 100일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벌써 100일 이후의 내 삶에 기대가 부푸는 중이다. 심훈의 시 '그 날이 오면'이 생각난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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