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져야 한다. 지렁이 정도로 낮아져야 한다. 앞으로 얘기할 꼰대론의 전제가 되는 사상(?)이다.
무조건 상사를 하늘로 여기고 나는 버러지라고 생각해라. 아무 의문도 갖지 말라. 그냥 내가 늦게 입사했다,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지렁이요 벌레 같은 존재인 것이다.
꼰대는 존경받고 싶다. 나의 모든 이력과 경험, 사생활까지도 말이다.
A는 방송국의 인턴 직원이었다. 나중에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그런 형태의 고용이었다.
그가 알고 지내던 카메라맨 얘기다. 그는 방송국 소속도 아녔고 외주 회사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많고 해당 방송국과 연이 깊다는 이유로 어딜 가든 선배 행세를 했다. 그 동네 문화가 그렇다고 하니 선배 선배 했지만 명백히 말하면 그가 왜 선배인가 의문을 가졌다. 인생 선배라서? 부장님이라든가 그 회사에서의 직함을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의구심 때문에 그가 무언가를 지시하면 '저희 회사 쪽에 물어볼게요'라며 즉각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회사 상사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A의 회사 사람 한 명에게 A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린것이 가방끈 길다고 사람 우습게 본다고. 언론 쪽 일 못할 거 같다고 했다고 한다. 같이 현장에 나갔더니 행동이 굼뜨다느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는다느니.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A와 함께 업무를 하고 나면 곧바로 편집실로 가서 영상 편집을 하는 사람들과, 그다음엔 PD와 수군댔다. A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그를 평가하는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A 역시 회사에서 자신이 점점 소외된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에게 웃지 않았고 다른 부서의 몇몇 사람들은 그를 측은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지만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아무도 그에게 업무 이외의 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신입사원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 자기 얘기를 묻기가 쉽지 않았던 거다.
결국 A에 관한 구설수는 인사권자 귀에 들어갔다. 귀가 얇은 인사권자도 그 프레임으로 A를 보기 시작했다. 정말 행동이 굼뜬 거 같았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인턴이라고 용납되는 건 없다. 인턴 기간 후 마침내 평가 시기가 왔다. A는 그 회사 역사 상 최초로 정규직에 전환되지 않은 케이스로 남았다. 그리고 그 카메라맨은 여전히 그 방송국과 일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들어오는 직원 품평회를 계속하면서.
B의 상사는 사생활이 의심되는 사람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이따금씩 어린 직원들만 따로 불러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회식을 하고는 했다. 이때 하는 말이 '네 친구 예쁜 애들 좀 불러봐'였다고 한다. 그가 딱히 그 예쁜 친구들과 뭘 어떻게 하지는 않았지만 20살 이상 차이나는 어린 여자들과 같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고 한다. 그의 카카오톡은 항상 어디서 만났는지 알 수 없는 20살 어린 여자들과의 대화로 분주했다.
그가 가정이 없던 것도 아니다. 이따금 자녀를 회사로 데려오며 직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좋은 아빠인지 과시하기도 했다. 술자리에서는 아내에게 사준 명품들을 자랑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사님 같은 남편 어디서 만나나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꼰대들은 자신의 능력이 어떻든, 인성이 어떻든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 꼰대력에도 귀천이 없다.
우리나라 특유의 상명하복 체계에서 생긴 문화다. 앞서 서술했듯, 군대에서 체득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져서 그렇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적응하려는 여자들도 이 문화에 익숙, 아니 오히려 더 강화하기도 한다. 나이, 학벌, 집안 출신에 관계없이 먼저 들어온 놈이 승자다. 명령 하나면 모든 게 다 되니 얼마나 편한가. 먼저 들어온 게 장땡이란 심리로 꼰대 짓을 한다. 꼬우면 일찍 입사하지 그랬냐. 전형적인 꼰대 심리다.
꼰대 상사에 잘 대응하고 싶다면 '당신은 하늘 나는 버러지다'를 아침마다 마음에 새기고 출근하자. 어떤 불합리한 지시나 그의 말도 안되는 농담에도 면역력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