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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Jan 07. 2020

'나는 그 자체로 존엄하다'

A는 이제 겨우 3년 차였다. 하지만 3년 동안 경직된 조직생활을 하며 개인의 인간성은 잃고 조직의 자랑스러운 부품이 됐다. 가장 잘하는 일은 폭탄주 돌리기, 가장 즐거워하는 일은 회사 상사들과 노래방에 가서 분위기를 띄우기가 되어버렸다. 청운지사의 순진했던 20대 청년은 오래된 회사의 앞잡이가 되어버렸다.


매일같이 상사의 술상무 노릇을 하느라 몸은 축이 났다. 건강한 육체의 건강한 정신이랬는데, 몸이 병드니 정신도 병이 든다. 재기발랄함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은 개나 주고 조직이 곧 그의 경전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20대였다.


그런 그에게 3년 만에 후배라는 존재가 생겼다. A 이후로 신입을 안 받았던 부서인데 오래간만에 신입사원을 배치해줬다. 아뿔싸. A보다 한살이 많네. 이 후배를 B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A는 당황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B에게 선배질을 하기 시작했다. A가 그간 당했던 방식을 고스란히 말이다. 물론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기는 그냥 그런 조직이니까'라며 B를 대했다.


반말은 당연하다. 먼저 들어왔으니까. A가 말한 것은 그 후배에게 곧 법이어야 했다. 다행히 B는 군필자라 이런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했다. 그도 꼰대 문화에서 짬밥이 갖는 권위를 잘 알고 있다. 최대한 A 말을 따르려고 했다.


A는 B에게 다양한 업무 지침과 기준을 알려줬다. 업무의 개론까지는 잘 설명해줬다. 하지만 B는 그 개론에서 일부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예컨대 9시 30분까지 일일 업무 보고를 해야 한다고 치자. 어느 날 B는 9시 35분에 업무 보고를 했다. 그런데 A는 답장이 없다. 사실 그 시간 A는 잠깐 커피를 사러 나와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9시 50분쯤 업무 보고를 확인한 A는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낸다. 자기 말이 우습냐고. 9시 30분까지 보내야 하는 걸 왜 9시 35분에 보내냐고. 5분 늦은 걸로 말이다. 심지어 본인은 B가 업무 보고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20분이나 자리를 비운 게 아닌가.


B는 신입사원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일도 서툴고 조직 분위기도 아직 잘 모를 수밖에 없다. A는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았다. 태풍처럼 싸대고 말도 안 되는 기한을 주면서 그때까지 수정해 오라고 했다. 그게 하루, 이틀, 몇 달씩 반복됐다.


반복되다 보니 윽박지르는 강도가 더 심해졌다. 결국 A는 꺼내지 말아야 할 말까지 꺼낸다. "너 군대는 갔다 왔냐. 이거 하나 똑바로 못하냐." 한 살 많은 B 자존심이 바스스 무너진다. 참을 때까지 참은 B. 그동안 선배랍시고 시중드느라 고생했는데 A는 그에 대해 인정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른다. 채찍에 채찍에 또 채찍. 이건 뭐 달리는 말도 아파서 마부를 떨어뜨리고 싶겠다.


어느 날 B는 A와 독대를 했다. A도 늘 화만 냈던 건 아니다. 선배 노릇을 하려고 커피도 사주고 본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하기는 했다. 방향이 잘못되어서 그렇지. 어쨌든 오래간만에 A와 커피를 마실 기회를 잡은 B는 조심스럽게 말을 열었다.


"이런 거 여쭤보긴 좀 그렇습니다만..."

"뭔데?"

"선배는 제가 왜 싫으십니까?"


그 순간 A의 뇌에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 '피꺼솟'이란 게 이런 느낌이구나. 30여 년 만에 처음 알게 된 느낌이었다. A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정말 B를 싫어하나?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이 복잡한 감정은 뭘까... 일단 생각하고 대답할 시간을 좀 벌어야겠다.'


"그게 뭔 소리냐?"

"제가 부족하고 잘 모르는 건 맞지만 왜 그렇게 절 싫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대하시면 저나 다른 사람들이 선배를 어떻게 볼지는 생각해보셨습니까?"


A의 뇌가 결론을 내렸다. 이 새끼는 미친놈이다. 이것은 하극상이다. 대뇌피질의 세포 하나하나가 심장보다 빠르게 뛰는 거 같다. 피가 거꾸로 솟아서 그렇다. 얼굴까지 빨개진 A가 마침내 고함을 지른다.


"야 너 미쳤냐? 내가 널 어떻게 보든 말든 내가 널 싫어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고... 회사 다니기가 힘들어서요..."


"진짜 미쳤구나. 네가 내 감정에 가타부타 논할 위치라도 된다고 생각하니?? 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든 네가 그걸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A는 이미 자신의 위치와 B의 위치를 위아래로 설정해놓고 아랫것이 상전에게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B는 마부를 떨어뜨렸다. 그 일이 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는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사수인 A에게도 말하지 않고 말이다. A를 비롯한 어떤 누구도 그의 퇴사를 막지 않았다. 이미 B는 '무능력하고 말도 안 듣는 신입'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인사권자가 B에게 퇴사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A 때문은 아닙니다."



심리학에 상향처리와 하향처리라는 개념이 있다. 상향처리는 정보를 대할 때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답을 찾는 방식이고 하향처리는 기존의 지식과 경험 등을 토대로 정보를 해석하는 사고다.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 하향처리로 정보들을 해석하고 처리한다. 판단과 결정은 빠르지만, 돌발 변수에 대처하거나 융통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나이가 들거나 자기 경험에 고착된 사람들은 하향처리 방식으로 타인을 대한다. 자기의 선입견과 잣대로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먼저 결론짓는다. 심지어 거기에 끼워 맞추는 경향도 있다. 상대방이야 어찌 되었든 자기만의 답을 이미 갖고 대한다. 자신은 소통이라고 생각하지만 대개 일방적인 전달에 그친다.


A는 하향처리 사고와 소통 방식으로 후배를 잃었다. 그 사건은 젊은 A에게도 꽤 상처가 된 거 같다. A는 군대식 조직 문화를 그대로 체득하고 상명하복은 직장에서 효율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는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야 자기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소통은 조직 구성원 사이를 흐르는 혈류다. 원활한 소통은 조직 내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해준다. 가정이든 회사든 국가든, 소통이 문제 없이 되는 조직은 성장하고 생기를 찾는다. 


반면 소통이 부재한 조직에는 껍데기만 남는다. 조직 구성원 간에 소통이 되지 않으면 업무가 정체되고 문화도 정체된다. 지시를 받는 입장에서는 '네 알겠습니다'만 반복하는 편이 속이 편하다. 피가 돌지 않으니 미라가 되어 버린다. 상사들은 '요즘 애들은' 타령을 하며 라떼가 되어버린다. 젊은 친구들은 자기 뜻과 아이디어는 물론 회사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 등에 대해 대화하고 해결하지 못해 이탈하고 만다.


이런 식의 소통 방식이 지속되면 급기야 불통으로까지 발전된다. 혈류가 느리면 동맥경화가 생기는 거와 비슷한 이치랄까. 불통은 아예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소통 이외에는 모두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A의 경우 자기 딴엔 좋은 뜻을 실천한 거였으나 상명하복이라는 잘못된 방법을 택했던 거다. 불통은 A와 같은 나름의 선의마저도 찾기 힘들다.


국가적으로 '불통의 아이콘'이라는 수장이 있었다. 인사(人事)도 국정(國政)도 자기가 만든 벽 안에서만 행했다. 그마저도 어떤 비선(秘線)이 만든 벽이라고도 하지만 말이다. 불통의 결과에 대해선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결과만 말하면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됐다. 현재도 여전히 국정농단 등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라는 거대 조직에서 소통이 부재할 때 리더십은 물론 조직 전체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 수장과 A는 비슷한 부류의 인간상이 아닌가 싶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선입견, 경험만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자신이 믿고 있던, 의지하고 있던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한 사람에게선 명예와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다른 한 사람에게선 사회생활의 신념과 가치관이 무너졌다. 진정한 어른, 리더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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