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사 Sep 17. 2019

"문재인 대통령님, 임산부인데 여기까지 왔어요"

기자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임신 중기 정도였던 때의 일이다.




기자 일 중 가장 재밌고 다이내믹한 부분은 유명 인사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질문 한번 던지는 때이다. 좋은 질문을 하면 그 사람에게 나라는 존재를 각인할 수도 있고 좋은 대답이 나오면 그게 또 기사가 되고 특종이 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정책을 선회했다. 소득 주도 성장에서 경제 활력 제고로 말이다. 대기업과 무언가 묘책을 내놓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그날은 문 대통령이 갑자기 한화 그룹의 첫째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를 만나는 일정이 급하게 잡혔다.



모든 기자들은 총출동을 했다. 나 역시 여의도 어딘가 기자실에서 기어 나와 둘이 만나기로 약속한 서대문구의 자영업자 업소 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타사 기자 여럿을 만나면서 무슨 질문을 할 거냐, 갑자기 이게 뭐냐, 왜 하필 소상공인의 점포냐는 등의 얘기를 나눴다.  왜 홍보팀은 기자들 이동할 수 있게 버스 준비도 안했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목이 탄다.

가는 길에 잠시 한 편의점에 들렀다. 뭣좀 사 마실까 하는 맘으로 갔다가 시간이 부족해 다시 후다닥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마침내 도착한 해당 점포에는 이미 회사 선배 한 분이 와있었다. 그 선배가 당국 출입이었고 내가 산업 담당이기 때문에 양쪽에서 커버하잔 의미다.


갑자기 점포 주인이 문을 닫으려고 한다. 기자들이 술렁인다. 대체 무슨 일이냐.

점포 주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했다. 아까 내가 들렀던 그 점포라고 한다.

가장 문 쪽에서 대통령과 전무 일행을 기다리던 나는 급하게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내리막을 내려왔는데, 돌아가려니 오르막이다. 심지어 오르막도 점점 가팔라지는 기분이다.


제일 빠르게 출발했다고 했는데 다른 기자들이 다시 앞서가기 시작한다. 임신을 해서 그런지 몸이 너무 지쳐서 더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헉헉대면서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님, 임산부인데 여기까지 일하러 왔어요. 불쌍하니 한마디라도 해주세요 해야지'라고.


그런데 숨이 너무 막혀 도저히 길을 갈 수가 없다. 걸어도 걷는 게 아니다. 눈을 질끈 감고 다리를 올려봤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대통령 멘트를 못 땄다.' 회사에서 깨질 게 눈에 선하다. 울 것 같은 기분으로 눈을 떴다.


눈을 떴다. 왼편에 남편이 평화롭게 새근새근 자고 있다.


이 모든 게 꿈이라서 참 다행이다. 하마터면 기사 물먹고 스트레스받아 태아한테까지 악영향 줄 뻔했다.

너무나 일상 같은 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토록 불친절한 산부인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