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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22. 2023

아직 더운 한낮엔 매실에이드

당신의 술버릇은 무엇인가요

 오래 두고 먹던 매실청을 비웠다.

 체기가 있을 때 소화제 대신  따듯한 물에 타 먹는 용도로만 쓸 때는 잘 줄지 않더니 매실에이드를 만들어 먹었더니 훅훅 굴어든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아직 더운 한낮 매실에이드 한 잔을 마시면 몹시 시원하고 개운하다.

 컵에 얼음을 담고

 매실진액을 넣고

 탄산수를 붓는다. 끝.


  달달하고 시원하고 딱이다. 탄산수 대신 사이다를 추천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게는 너무 달다. 매실 고유의 향긋하고 달달한 맛이 남아 있으면서도 개운한 탄산수와의 조합 딱 좋다.

왼쪽이 홈메이드 매실주. 오른쪽은 새로 구입한 매실 진액. 이미 많이 마셨다.

 남은 여름을 위해 친정에서 매실진액을 받아온다.

 익숙하게 매실에이드를 한 잔 만들어 아이에게 주었는데 표정이 이상하다. 담그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하고는 나도 한 잔 타서 입에 넣는데 엥? 이건 레시피의 차이라고 하기엔 너무 다르다.  집에 오래 있었다더니 매실이 푸욱 익어서 이런 시큼한 맛이 나는 건가. 아니면 이게 매실주인 건가. 구분을 못하겠다. 전화를 해 이것의 정체를 묻자 매실 진액인 줄 알고 싸주었지만 오래되어 엄마도 모른단다.


 발효가 된 건가, 술인가.

 구분한다고 홀짝홀짝 먹어본다. 혹여라도 매실주라면 안되니 아이 것까지 빼앗아 내가 먹는다.


 어이쿠 이런,

기분이 씨일 좋아지면서 흥이 나네.

 매실주임이 확실해졌다.


 임신과 출산 수유, 거기에 육아까지 몇 년을 의도치 않은 금주를 했더니 맥주 한 캔만 마셔도 얼굴에 열이 나고 붉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량은 이모냥이라도 맥주 고만큼에 어찌나 흥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이 둥글둥글 유해지는지 가성비로 따지면 이만한 것이 없다.

@pixabay  이 남자 부럽다

 술만 마시면 사소한 것도 참으로 재미지고 신 난다.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의 농담 한마디에 방정치 못한 박수를 발사하며 시끄럽게 웃어댄다. 회식 자리에서 윗사람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크게 웃고 나서 '아 나 취했구나' 깨달은 적도 있다. 맨 정신이었으면 입가 주름에 단 0.1mm의 움직임도 없었을 이야기였다. 

 나의 술버릇은 웃는 거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다른 이의 장점만 보이고 함께 술을 마시는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이 샘솟기도 한다. 진정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저 분위기가 좋아 그런 것 아닐까 의심을 품어본 적 역시 있으나 운전을 위해 논알코올 맥주를 나눠 마셔 보았더니, 영 흥이 나지 않았다. 분명 알코올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도대체가 기준은 알 수 없지만 본인이 자기네 학과 3대 미남 중 하나라고 우기던 친구가 있었는데 딱 보기 좋은 체형의 그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초고도비만이었단다. 수능 후 혹독하게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했다며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간식 하나 고를 때도 신중하게 고르던 그였는데,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겼다  폭식을 한다는 거다. 만취해 들어가다 집 앞의 포장마차에 꽂혀있던 어묵꼬치를 몽땅 다 사 먹고 들어갔던 자신을 그다음 날 힘겹게 기억해 내고 앞으로 본인을 좀 말려던 친구.


 술에 취하면 애써 눌러놓았던 본능이 나오는 건.

 술이 어설프게 깬 채 잠자리에 누워 히키코모리처럼 살고 있으나 나의 본능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뭐.

 나 자신의 본능이 무엇인지 꼭 알 필요는 또 무언가.

 맥주 한 잔 마시면서도 '정신 꼭 차리고 먹어야지' 하며 긴장할 필요 없는 사람들과 맛있는 안주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먹을 수  지금이 만족스러운데 깊이 팔 필요 없지.


 그뿐인가.

 색깔도 모양도 맛도 비슷해 영 구분하기 힘든 매실주와 매실진액을 단박에 구분해 내지 않가. 오우. 이런 뜻하지 않은 감별능력까지 갖추게 된 나 자신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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