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외식을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분 좋게 소주까지 걸치던 아주머니는 옆 테이블에 놓여 있던 계란찜이 서비스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돌변한다. 직원에게 왜 우리는 안 줬냐 화를 내기 시작하며 기준과 형평성을 논하는 그녀. 계란찜 하나에 그전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저 멀리로 날아가고 만다.
주변 사람들은 받는데 나를 건너 띈 것을 깨닫는 순간 어쩐지 내게만 박하게 구는 것 같아 심술이 날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받지 못한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 역시 존재한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통해 그 존재를 익히 알고 있던 브런치의 알림.
브런치를 시작하고 1년 반이 될 동안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다. 다른 분들이 받는다고 시샘한 것은 절대 아닌데 기어이 받고 말았다. 얼마간 글을 쓰지 않으면 오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발행일은 9월이다.
쓸 말이 없고 시간도 부족하고 정말 잠이 쏟아지는데도 기를 써 쥐어짰다. 써놓은 글이 한참 부족하단 걸 알면서도 일단 정해진 텀이 되면 발행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구실을 달아 한 번 넘겼더니 그 기간이 훅 길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브런치는 글쓰기를 게을리하고 있음을 분명 알면서도 나는 이래서 바쁘고 저래서 바쁘고 핑계를 대고 있던 내게 너 지금 영 글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참으로 점잖게 일러준다.
여전히 출근길에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샤워를 할 때도. 심지어 온몸의 긴장과 잡생각을 비우고 평안한 상태에 있으라는 요가 시간에도 문득문득 떠올리고는 있지만 어째 요즘은 영 그것이 글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또 이건 이래서 쓰기 싫고 저건 저래서 쓰기 싫다고 피하고 있는 게다. 글 하나 쓰려면 머릿속에 오랫동안 집어넣고 있어야 하는데 우연히 떠오른 것도 기쁘지 않은 기억들을 오래 생각하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깊이 머금어 글로 쓸 깜냥이 없는 게다. 새살이 채 돋지 않은 상처를 헤뒤집지 말자 이러면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있다.
설상가상.
글을 쓰지 않으면 얼마나 쉽고 편하고 여유로운지를 알아버리고 만다.
너무나 짧은 가을을 놓치지 말고 최대한 붙잡아 즐겨야 한다고 결심한 터였다. 최선을 다해 밖으로 싸돌아다니며 맛난 것을 먹고 코에 맑은 바람을 집어넣고 재미나게 놀기로 한다. 글을 쓸 시간에도 나가 놀고 집에서도 생전 안 하던 미드 정주행까지 했으니.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놔봤자 결국은 노느라 바빠 글을 쓰지 못한 셈이다.
문득 깨닫고 만다.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면서 늘 할 것이 남아 있다는 부담과 중압감으로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고3병마냥 어정쩡하고 불편하고 평온하지 못한 마음이 글쓰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심지어 나의 불면의 원인 중 큰 부분을 글쓰기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면 설렘과 기쁨에 손가락이 간질간질한 것이 아니라 괜히 집안일에 매진하고 한동안 밀려 놓았던 아이 문제집 채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데 그동안 겨우 겨우 유지하고 있던 나의 미미한 근육들마저 사라질 위기다. 이러한 근손실의 위기에서 근육을 키우자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은 너무 짧고 노는 건 즐겁다 이러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