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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19. 2023

손가락이 느리다

 이제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 일단 선택지에서 배제다.

 추첨도 참 싫은데. 갈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콘서트 티켓의 현장 발매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소싯적의 내 모습이 스쳐가지만 그때도 사실 힘들었다. 지금은 한 자리에 서 오래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 내 상체와 하체가 동시에 내 허리를 압박해 오는 것이 느껴진다. 보기 흉한 것을 알아도 허리를 움찔움찔 움직여보지만 이미 요추에 찌릿찌릿 전기가 오고 저리기 시작한다. 


 예전엔 오래 앉아 있으면 발만 저리는 건 줄 알았지. 

 전기 오르게 해 준다며 누군가가 내 손목을 꼭 쥐고 팔을 쓸어내리고 내 나이만큼 주먹을 폈다 접었다 하지 않아도 일이 좀 많았다 싶기만 하면 어느 순간 손이 저리다. 몇 년 전부터는 허리도 저려온다. (잠깐. 몇 년 전 아이 손에 전기 오르게 해 준다고 요거 했다가 아이도 내게 해준다는 통에 주먹을 얼마나 접었다 폈는지. 참으로 많다 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러니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줄을 서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맛있다 해도 줄 서면서 이미 힘겹고 지칠 것이 뻔하다. 

 키오스크에 핸드폰 번호를 입력해 놓고 대기하는 건 그나마 낫다. 아직도 대기 순번이 많이 남았는데 호명할 때 없으면 번호가 넘어간다는 자그마한 경고 문구에 또 소심해진다. 중간에 포기하고 간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멀리 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서성 서성하고 있으니 줄만 안 선다 뿐이지 딱히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심지어 그 전날 밤부터 캠핑의자를 갖다 놓고 밤을 새워 줄을 선다는 사람들은 경이롭다. 오픈런을 대신하는 알바가 있다는 것을 시사프로그램에서 봤을 때는 진정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이러니 가능하면 예약이 되는 식당을 고르고 다른 것들도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것이 고맙다. 여전히 치열하다 하더라도 편히 앉아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셈이다. 왔다 갔다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는 말할 것도 없다.

https://naver.me/5DbfqWTV

 그런데.

 온라인 접수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여전히 몸은 뻣뻣할지언정 1년 가까이 요가를 배우고 있다. 조금만 힘든 자세가 나와도 이건 내게 무리라며 최대한 쉬운 자세로 변형하며 요령을 피우면서도 내가 요가를 다니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쩐지 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 같으며 저절로 건강해질 것만 같다는 마음의 안정을 주던 요가 수업.

 

 인터넷 선착순 접수에 실패했다.

 미리 사이트에 들어가 로그인까지 완료하고 해당 과정을 찾아놓고 그저 클릭만 하면 되게 모든 것을 세팅해 놓고 초 단위까지 나오게 설정한 핸드폰 시계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너무 일찍 들어가 있으면 안 될까 봐 중간중간 새로고침까지 해 가며 00분이 되자마자 접수하기를 누르고 '신청확인'을 눌렀는데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팝업이 뜬다. '느아...'육성으로 탄식 소리가 나온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고침을 해 보지만 역시나 '마감'이라고 아주 또렷하게 쓰여 있다.


 갈수록 힘들구나.

 아이가 가고 싶다는 테마파크의 티켓을 구매할 때도 그랬다. 밤 12시 00분에 열리는데 순식간에 마감이 된다는 정보에 결제카드까지 미리 저장해 두었다. 핸드폰 시계는 안되고 네이버 시계로 58초에 들어가면 성공한다는 한 블로거의 성공기를 지침 삼아 오밤중에 초 긴장한 상태로 핸드폰을 꼭 쥐고 있다가 밤 11시 59분 58초에 들어가 구매수량까지 입력하고 이제 됐다며 결제버튼을 눌렀는데 야속하게 뜨는 소진 안내창. 네이버 시계는 00시 00분 13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마치 죄지은 사람마냥 엄마가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안 됐다며 잔뜩 실망해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아이에게 버버버벅 변명질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사람 손으로는 못하는 것 같다. 매크로를 사용한 걸까? 의심만 늘어난다.


 광클이 점점 힘들어진다. 매크로를 이용해 수강신청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이랬다가는 학교 다닐 때 수업도 못 들을 뻔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축구경기도 콘서트도 피켓팅(피가 튀기는 티켓팅) 대열에 참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https://m.blog.naver.com/alice042626/222811068006

  분명히 내 돈을 쓰는 건데 마치 돈을 아끼는 것만 같은 기분으로 지역상품권을 사용한다.

 초기에는 보유한도도 구매한도도 없었다지만 내가 알게 된 때에는 이미 두 가지 다 있었던 시기. 그래도 10%의 할인율은 몹시도 매력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물건을 구매하고 열심히 번호를 누르는 포인트 적립률은 0.5% 이런 식이다. 1%도 되지 않는 것들이 허다하고 구매할 때 1% 이상의 적립을 해준다는 카드들은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전월실적이 많거나 연회비가 있거나 하지 않는가. 사용할 때마다 10% 할인받아 물건을 사는 셈이라며 스스로 몹시 슬기로운 소비생활을 하는 듯해서 아주 뿌듯했다.


 그런데 갈수록 구매한도가 줄어들고 할인율도 줄어든다. 게다가 총판매금액자체가 터무니없이 줄어들었더니 상품권 살 때마다 전쟁이다.


 상반기에는 1년에 몇 번 없는 상품권 발행일을 미리 확인하고 판매 시간 10분 전 알람까지 맞춰두고 역시나 비장한 각오를 하고 핸드폰을 쥐고 있었으나 접속 자체가 안된다. 겨우 접속하면 대기 인원이 몇만 명. 새로 고침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에 끝까지 쥐고 있는데 시간이 몇십 분이 지나가고 그 상태로 끝나버렸다. 구매 실패. 한도 50만 원에 할인율 7%, 결국 3만 5천 원을 아끼자고 이렇게 긴 시간을 내가 핸드폰에 절절절절 하고 있었단 사실 자체가 화가 났다.  


 이번에는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고 지나칠까 하다 3만 5천 원을 포기하지 못하고 또다시 알람을 맞춰놨다. 금액이 늘어서인지 구매에 성공했다. 청소를 열심히 해서 그런가 손에 풀기가 없다며 결제 시 지문 인식을 위해 손에 물까지 발라가며 말이다. 


 바깥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편한가 하면서도 며칠 상간에 몇 번의 실패를 맛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손도 느려진 것 같고 매크로를 의심하면서도 매크로를 익혀 도전할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고 있는 스스로가 약간 무기력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요거 구매에 성공했다고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주 오래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활용 방법을 강의하신다는 강사분의 말.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안된다고 하시는 것이 의외로 클릭이란다. '더블클릭 하세요' 하면 따닥 하는 너무 속도가 느려 폴더명을 바꾸라고 나오는 게 부지기수라는 그분의 말이 지금의 나를 보며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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