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를 시작으로 주말 꽉 채워 동남아 순회공연하듯 사촌들을 만나 야무지게 논 아이는 일요일 밤 9시가 넘어 말은 '일기'인데 일주일에 딱 한편만 쓰는 일기장을 편다. 성황리에 마친 일정에 피곤할 텐데 내일 내야 한다며 쓰는 걸 보니, 칸을 채우기 위해 일부러 글자를 크게 써도 그저 기특하다.
나의 글쓰기에도 이렇게 데드라인이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월수금 발행을 해보자고 결심하자마자 위기다. 초기의 작가의 서랍 안에는 언제든 발행만 누르면 되는 글들이 두 편 정도는 들어있었다. 그러더니 지금은 퍼뜩 생각난 글감을 메모한, 문장도 아닌 단어들만 적혀있다.
아이만 논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목이 약간 따가울 만큼 수다를 떨었고, 초록에서 노랑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반짝거리는 가을의 논 앞에서 콧구멍에 바람을 넣었으며 뜻하지 않게 각종 운동까지 알차게 하고 왔다. 그런데 수없이 지난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을 캐치해 글로 엮으려니 어이쿠 이런, 글발이 부족하다.
옮기기 쉬운 건 3대가 이어 하는 음식점에서 본인이 메뉴를 잘못시켜놓고 원래 맛이 이런 거냐며, 자기 지금 '어거지'로 먹고 있다며 시비를 걸던 그나, 이제 막 놀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길래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 양보했더니 30분 넘게 즐기는 통에 아이들에게 미안해 내가 반성한, 언짢은 이벤트들이다.
600만 달러의 사나이와 소머즈까지 소환하며 일상에서 보고 들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호기롭게 매거진을 시작했으나 어째 결국 뒷담화다. 똑같이 엿듣는 셈이지만 들으면서 훈훈했던 일들을 적고 싶었는데 말이다. 내가 세상을 삐뚤게 바라보나 하는 의심이 든다.
꼭 즐거운 일만 글로 쓰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도 읽을 때 그날의 편안했던 마음이 다시 한번 느껴지고 그때의 우스운 기억에 또 홍홍 거리며 콧바람을 내게 되는 글이 좋다. 순화해서 적었는데도, '왜 그럴까' 싶었던 일을 마주하면 그닥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소재에 제한이 많다면서도 그런 건 또 쓰기 싫은 게다.
아이의 일기는 참으로 일관적이다. 누구를 만나서 어디에 갔고 맛있는 것을 먹었으며 무엇을 하고 놀다가 밤에 몇 시까지 안 자고 계속 놀았다. 정말 재미있었고 일요일 밤에는 오늘이 다시 금요일이었으면 좋겠다. 마무리는 다음에 또 만나서 재미있게 놀아야겠다는 진심이 묻어나는 다짐이다. 그 사이 운 일도 있고 혼난 일도 있지만 일기장에는 물론 아이 머릿속에도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 있다. 하루 일을 나열하지 말고 가장 즐거웠던 일 한 가지를 쓰라지만 우열을 가릴 수 없게 가장 즐거웠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일기를 읽으며 나도 웃고 있으니 더 이상 어떻게 잘 쓰랴.
아이에게 말해놓고 나는 하지 못하는 것을 아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실천하며 내게 가르침까지 준다.
"엄마, 좋은 것만 기억해. 나빴던 건 그냥 잊어버리고."
따박따박 날짜 맞춰 글 못쓰면 또 뭐 어떤가.
비슷비슷하게 생겨 쌍둥이 놀이하듯 서로 꼭 붙어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느낀 뿌듯함과, 집에서 절대 못해먹는 맛있는 것들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방정치 못하게 손뼉을 쳤던 것, 상금 달랑 5천 원에 그렇게도 열심히 뛰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만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 하며 벅차게 올라왔던 행복, 풀밭에 머리 대고 앉아 있으면 어느새 벌레 한 마리씩 발견하던 모습, 아이들한테는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함께 즐겁게 하면 된다더니 어떻게든 애들을 이겨보겠다고 그리도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던 어른들을 보면서 승부욕이 대대로 유전인 건가 폭소를 터뜨렸던 순간들, 길가에 핀 나무 열매 하나에도 끊이지 않던 대화, 하루 가을볕에 살짝 까매진 피부를 보면서도 좋다고 웃던 그 즐겁고 좋았던 순간들만 기억할란다. 그러기에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