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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06. 2022

희망을 주는 그림 실력

 올 초에 태블릿을 샀다. 노안이 심해진 게 가장 큰 원인이었을 거다. 스마트폰으로 전자책 보는 건 무리였다.  시작은 북리더기로 검색했는데 '이왕이면', '이왕이면'을 몇 번 거쳐 결국은 큰 마음먹고 펜까지 달린 태블릿을 샀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단가가 올라가니 명분을 막 갖다 붙다. 결국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 새해 선물 더하기 아직 한참 남아 있던 나의 생일 선물이 되었다.


 펜이 달려있으니 그림 그리는 앱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이리기만 하면 되는데, 똥 손이다 보니 뭘 그릴지도 생각이 안 난다. 도착 첫날 아이가 빨리 그려보라 해서 사과를 하나 그렸다.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릴 때, 부모가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그리거나 너무 잘 그리면, 자기가 그린 그림과 비교가 되니 아이의 창의성과 의욕이 꺾인다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이에게 희망을 주는 그림 실력을 가졌다. 최선을 다해 그려도 아이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바람직하다.


 며칠 뒤, 설 연휴에 할머니 집 거실 바닥에 엎으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보니, 등이 신났다. 신난 등을 보며 처음으로 집중해서 그림을 그려봤다. 아이 어릴 때 같이 색칠공부도 하고, 그림 쉽게 그리기 같은 책을 사서 보고 그리기도 했지만, 내 앞의 실물을 그림으로 옮겨 그리는 건,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실기시험으로 정물화를 그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얼마 만에 그린 그림일까. 아이가 더 어릴 때는 그래도 종종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말이다



 그러고 나서 아직도 한 번도 그림을 안 그리고 있다. 3월부터는 거의 브런치 전용으로 쓰는 이 태블릿을, 요새는 아이가 빙고판으로 사용 중이다. 종이에 해도 되는데 꼭 여기에 해야겠단다. 중간중간 색깔도 바꿔가며 열심히 하고 있다. 빙고 좀 하다 보면 글씨를 쓴 위에 동그라미를 열심히 치느라 주먹 쥔 아랫부분, 새끼손가락 옆면이 화려한 색으로 색칠이 되어있는데, 여기에 하니 손이 깨끗한 데다, 색깔 고르느라 집중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태블릿을 내주고 만다.


 그림 그리기에 최적화된 태블릿을 가지고 빙고만 하고 있다니. 뭐 각자의 필요에 맞춰 쓰면 되는 거겠지만, 마음 저 속에 나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아이의 그림 실력은 늘어갈 테니, 그 정도만 쫓아가고 싶다. 웹툰을 따로 찾아보지는 않지만, 브런치에 올라온 그림 글들을 보면, 수십 줄 문장에 담을 말을 그림 하나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그 능력이 부럽다.


 언젠가는 나도 사과 말고 다른 것그릴 수 있겠지. 아니다. 당장 오늘부터  하루에 한 개씩, 무어라도 그려봐야겠다. 오늘은 오이를 그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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