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고 나오는데 눈가가 분홍색으로 변한 아이가 팔을 잡아끌어 휴동이 앞으로 데려간다. 왕사슴벌레 휴동이는 태생이 야행성에다 움직임이 적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휴동이가 가만히 있는 걸 볼 때마다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더듬이를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을 하곤 했다.
휴동이를 보자마자 '아 이제 아무리 기다려도 더듬이를 못 움직이겠구나' 싶으면서 갑자기 올라오는 눈물을 억지로 누르느라 목이 아파온다. 평소보다 더 납작해진 휴동이는 다리가 모두 구부러져있었고 더듬이도 축 쳐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한번 들어 보라고 했는데, 들어 올리면 버둥거리면서 힘차게 흔들던 휴동이 다리는 그냥 그렇게 구부러진 채로 미동도 없다. 그때부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붙들고 울려고 했던 아이는 엄마가 갑자기 소리까지 내며 울자 당황해서는 행주를 가져와서 내 얼굴을 닦아줬다. 이왕이면 수건을 갖다 주지, 하필 행주냐.
휴동이는 3년 반 전에 우리 집으로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는 동물을 키우자고 계속해서 졸라댔고, 나는 동물 키우는 게 그렇게 두려워서 다른 장난감으로 거의 돌려막기 하다시피 했다. 지금 집에 있는 고가의 게임기는 '왜 나는 동생도 없는데 동물도 못 키우냐'라고 정말 심하게 운 날, 나를 구해주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앞에서 납작한 종이상자에 가득 넣어 팔던 병아리 한 마리를 사 왔다. 우리는 이름을 봉동이라고 지어주었다. 우리가 빠르게 걸어가면 봉동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쫓아오곤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좋아서 몇 번이나 마루를 왔다 갔다 했다. 인형을 만질 때와는 또 달리 봉동이를 만지면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는 털이 너무 부드럽고 따듯했다.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들이 대부분 그렇듯, 봉동이도 채 2주일을 버티지 못했다. 아침에 담았던 모이가 그대로 있었고, 봉동이는 옆에 누워있었다. 샛노랗던 털이 왜 이렇게 갈색이 됐나 싶어 들어 올린 봉동이는 차가웠고, 보송한 털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찬 몸통이 느껴졌다. 우리는 소리 내 울면서 봉동이를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그다음 날 봉동이가 잘 있나 들여다보았을 때 군데군데 흙이 묻은 봉동이 시체가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고 그날 저녁을 먹지 못했다. '내가 봉동이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학교 앞에서 사지 말라고 했는데' 하고 계속 울면서 살아있는 동물을 돈을 주고 사 왔던 나 자신을 엄청나게 탓했다. 그리고 그 뒤로,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가 그렇게 졸라도, 내가 받았던 그런 충격을 아이가 받는 것이 두려워 나는 절대 동물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집에 왕사슴벌레를 데려왔다. 사슴벌레를 집에서 키우던 남동생은, 게 중 튼튼해 보이는 한 마리를 '누나의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흰색 우리에 담아 나뭇가지와 젤리 통까지 세팅해서 아이에게 선물했다. 그게 휴동이다. 아이는 삼촌이 사슴벌레를 가지고 온다는 말을 듣고는 그날을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리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젤리 갈아주는 것과, 한 달에 한번 톱밥 갈아주는 것까지 모두 자기가 한다고 생후 처음으로 스스로 집안일을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나의 걱정을 아는 동생은 보통 왕사슴벌레 수명이 1년 내지 2년이라며, 혹시 휴동이가 잘못되면, 아이가 알기 전에 비슷한 왕사슴벌레로 재빨리 바꿔주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아이보다 더 자주 휴동이를 들여다보았나 보다.
휴동이는 밝을 때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밤에 캄캄한 방에 불을 켰을 때 휴동이가 크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딱 멈추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꼭 알고서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나는 웃겨서 나는 혼자서 '이놈, 다 봤다' 이러면서 웃었다. 일주일 만에 싹 다 비워진 젤리 통이 세워진 채로 젤리를 먹고 있는 휴동이를 보면서는, '그럴 리 없는데 혹시 휴동이가 젤리 먹을라고 이걸 세워 놓은 건 아니겠지?' 하면서 무식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깜빡하고 젤리를 늦게 갈아주면 바로 젤리 통에서 더듬이를 움작거리면서 젤리를 먹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 미안'하면서 말을 걸기도 했다.
젤리 통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급히 갈아주자, 곧바로 젤리 통으로 와서 먹는 게 웃겨서 찍어놓았던 사진
작년 여름에 이사할 때는 이사 차량 내부가 너무 더울까 봐 휴동이를 미리 자동차로 옮겨 나르기까지 했다. 큰 집 작은 방에서 혼자 살던 휴동이는 작은 집에 이사 와서는 우리가 자는 방에서 같이 살았는데, 자다가 휴동이가 나무를 밀며 드그덕 거리면서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면 잠결에도 '이놈, 튼튼하게 잘 살아 있구나' 하며 안심을 하면서 다시 잠이 들었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 소리를 들었는데, 하루 만에 이런 모습을 보니, 내가 아이를 위로해줘야지 하는 의지와 관계없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삼촌에게 전화하니, 남동생은 3년 반을 살았으면 거의 기네스 급이라고, 사람으로 치면 110살 넘게 산 거니까 괜찮으니까 너무 울지 말라고 아이를 위로해줬는데 사실 훌쩍거리고 있던 건 나였다. 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니, 원하면 표본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 물으니 볼 때마다 슬플 것 같아서 그건 싫단다. 이따 아이가 오면 같이 화단에 묻어주기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반려동물이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표현을 많이들 쓴다. 그런데, 무지개라도, 다리를 건너 내가 없는 곳으로 가는 건 싫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내가 체온을 느껴본 적도 없는 휴동이가 떠난 것이 이렇게나 슬픈데, 몇 년씩 부비던 반려 동물을 떠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딜까. 친구 집에서 19년을 키우던 멍멍이가 죽자, 평소 입에 술도 안 대시던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집안이 초상집 같았다는 말을 듣는데, 멍멍이를 본 적도 없는 내가 다 슬펐다.
오늘 아침 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제 괜찮아. 마리모는 100년 산대' 얼마 전 데리고 온 마리모 두 마리만 키우고, 이제 더 이상 동물은 안 키운단다. 고맙다. 아무래도 나는 반려동물은 더 못 키울 것 같다.
며칠 전에 써놓은 애완동물 이야기를 서랍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그 짧은 사이 휴동이가 떠나고 나서야 올리게 됐다. 사슴벌레로서는 천수를 누린 거라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휴동아, 다리 건너편에서도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