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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28. 2022

내게 너무 먼 그 길

 마음이 향하면, 마음에 품으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미 좋아하게 된 너에게 가는 길, 내게 너무 먼 그 길.

 어쩐지 지난 가요를 뒤지면 비슷한 노래 가사가 하나쯤은 나올 것 같다. 러나 나의 그 길은 손이 살짝 오그라드는 이런 길도 아니,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물리적으로 먼 길도 아니다.

어이없게도 내게 너무 먼 그 길은 저녁에 씻으러 가바로 그 길이다.


 집은 그리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알고 보면 본인 몸은 씻지 않는 꼬질한 사람이었던 것인가. 도대체가 저녁에 샤워하러 들어가는 그 길이 왜 이리도 먼 것인가.

분명히 알고 있다. 막상 샤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안된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안다. 샤워하고 나오면 훨씬 개운하리라는 것을. 무엇보다 이미 얼굴에는 화장품의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그놈의 수부지(수분이 부족한 지성피부)인 나의 피부는 조금이라도 빨리 클렌징을 해줘야 한다는 것도. 더 많은 빨리 씻어야 하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말해 무엇하나. 그런데 말이다, 이 모든 유에도 대관절 매일 저녁 샤워하러 들어가기까지의 그 길이 한결같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원래 그렇게 지저분한 사람이 아니라는 핑계를 찾아보자. 에 들어오는 즉시 저녁을 해야 하니 오자마자 씻는 것은 안된다. 밥 먹고 바로 씻으면 되겠지만, 다 씻고 나서 설거지를 하면서 물이 튀면 그게 또 그렇게 싫다. 결국은 설거지뒷정리까지 해 놓고 씻자는 생각이 주원인이다. 

 집안일이 눈에 보여도 일단 쉬자며 몽땅 쌓아두고 게으름 피우기를 시전 했더니 여기서 부작용이 나온다. 밥 먹고 잠깐만 쉬었다 치우자는 마음에 잠시 앉는다. 그리고 거기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마치 엉덩이가 의자에 따악 붙은 것처럼 일어나지를 못한다. 히 뭘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얼라, 뉴스 할 시간이다. 뉴스 하이라이트는 또 봐줘야 한다. 이건 아무래도 보고 나서 화가 날 것 같은 뉴스들이 연달아 나올 예정이면 차라리 끄고 음악을 듣는 것을 선택해야 하니까. 그런데 스마트폰을 쥐고 텔비전과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눈을 바쁘게 움직이 보 스포츠 뉴스가 나온다. 어이쿠. 그 사이 정말 힘겹게 식탁만 겨우 치다. 날씨까지 다 듣고 나서야 마음 잡고 설거지를 하러 간다.

 역시나 설거지 자체에 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 앞에 게으름 피우는 시간에 설거지를 했다면 아마 다섯 번은 했을 거다. 눈이 가장 게으르다는 말, 누군지 몰라도 처음 그 말을 한 이는 천재가 틀림없다. 싱크대와 바닥의 물기를 닦고 이제 진짜 씻으러 가야 하는데 바로 이 시점에서 앉았다가는 정말 큰일이다. 손발 하나 까딱하기 싫은 이 포인트. 늦게 씻느냐, 정말 늦게 씻느냐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알면서도 종종 앉아서 널브러진다.

파란화살표 끝에 바로 욕실이다. 아. 가깝기도 하지.

 경을 뚫고 먼길을 헤치고 가 마침내 씻고 나오니 참으로 개운하고 상쾌하고 오늘 하루도 알차고 즐겁게 보냈다 하는 마음이 든다. 아니 이럴 거면서 왜 몇 시간을 괴로워했을까나. 오래 괴로운 후에 씻어서 그 기쁨이 더 큰 걸까. 아니다. 이건 너무 갔다.

 집이 너무 커 욕실까지 가는 길이 멀다고 하고 싶으나, 벽 때문에 거실과 화장실 문을 한 번에 찍을 수도 없는 작은 집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는 이 정도 거리를 말하는 거다. 괜히 엎어져본다. 다행히 여분이 있다. 두 번은 못 엎어진다. 이렇게 짧은 이 거리를 쉽사리 가지 못하고 나는 밤마다 왜 이리 귀찮냐며 포효한다. 아. 내게는 너무나 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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