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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an 01. 2023

2023 새해 떡국 대신 냉파

더욱 편하게 살자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닌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고 도전하고픈 욕구를 불태우는 나의 모습 이미 낯설다. 위험 부담이 적은 것을 선호한다. 딱히 거창하게 이룬 것이 것도 아니면서 정신 건강을 위해 지금까지 읽고 들은 것들을 적절하게 조합 스스로를 설득하는 기술을 연마했더니 나름 또 지금의 내가 흡족하다.


 오래전에는 새해가 되기 한참 전 빳빳한 새 다이어리 빼곡하게 한해 계획을 세웠다. 카테고리별로 세부 사항을 써넣으며 굳은 다짐을 하곤 했다. 경제적인 목표도 있었고, 자격증 취득이나 연간 독서 목표량 수립 같은 구체적인 것도 있었다. 카테고리 이름은 달랐지만 모조리 금보다 더 성장한 내가 되기 위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1년 내내 채찍질했다. 같이 주어진 24시간을 남들보다 더 알차게 겠다며 분주히 보냈으며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죄책감을 느끼며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자 했다.


 미래의 라는 존재는 안중에서 사라지고 지금 당장, 24시간 붙어 챙겨야 할 존재가 생 후로 인생은 리셋 버튼을 누른 듯 바뀌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열심히 노력해도, 아무리 책을 읽어가며 공부를 해도 육아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짜놓은 계획 따위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사소한 외출 일정마저 아이의 땡깡 한 번에 모조리 엎어지면 그게 뭐라고 화가 나는 자신을 마주했다. 그나마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였다. 차라리 미리 계획을 짜지 말고 그때그때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더 이상 목표를 세우지 않게 된 것은 내가 계획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계기로 알게 된 그때부터일 테다. 세세하게 단기 장기 계획을 세워봤자 열심히 달리고 있는 내 머리 위로 벼락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 거였다. 부득부득 더 나은 내가 겠다며 지금의 나희생하고, 더 바람직한 미래의 나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욱 참고 디며 한다는 것 참으로 우습고 효율적이지  것이었다.


 에너지가 달린다는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이유 컸다. 그날 하루 무탈하게 보내기에도 나의 에너지는 주 빠듯다. 미래 위해  에너지를 저축할 여유 같은 것은 요만큼도 없다. 내일의 에너지를 카페인으로 야금야금 끌어다 쓰 방전을 이유로 나의 밑바닥을 보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최선의 노력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몹시도 게으르게 몇 년째 덜렁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신년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는다.

"편하게 살자"

 좀 더 나은 내가 되겠다며 애쓰지 다. 매 순간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선택의 기로에서는 내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이 일관적인 기준이다. 그 와중에 2022년에는 건강 이슈까지 터지면서 내 몸뚱아리 하나 온전히 챙기는 거 말고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치고 무조건 편하게 살자는 경지에 오르고 말았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 새해가 밝는다는데 딱히 감흥이 없다. 오늘 다음에 올 내일이고 어제에 이은 오늘이다. 새해가 되는 12시 00분에 새 다이어리를 펼쳐 글을 쓰던 의식과 같던 행동도 사라졌다. 심지어 한동안 다이어리도 쓰지 않다가 불현듯 손글씨를 쓰고 싶은 마음에 12월 아무 날에 마침 새로 생긴 다이어리를 시작했다. 해가 바뀌는 순간에 흥분하는 아이를 보며 부화뇌동하며 잠깐 고는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주는 것으로 새해 첫 활동을 시작했다.


 새해 첫날이라도 무리해서 일찍 일어나지는 않는다. 내키는 시간에 일어나서는 으르게 아침 메뉴를 고민한다.

 떡국을 먹어야만 한 살 더 먹는다고 믿는 사람도 없으니 떡국에 집착하지 않는다. 떡이 없다. 단백질에는 집착해줘야 할 때다. 냉동실에 있던 사골곰탕을 끓여 대파를 넣고 딱 한 끼용 남겨둔 살치살을 구워 콩자반과 낸다.

 

해가 바뀌어도 역시나 끼니때는 어김없이 재빠르게 닥친다.

점심을 위해 국 떡을 사러 나갈까 하는 생각이 찰나에 스쳤으나 귀찮다. 며칠 전 슬라이스 해놓은 냉장고 안 양파와 마늘반드시 오늘 요리를 해 먹어야 하는 상태다. 남은 베이컨까지 있는 이런 날에는 파스타가 딱이다. 냉동실에 있던 바게트를 찜기에 넣고 돌려 갓 구운 빵처럼 만든다.


 일요일 오후 세상에서 가장 느긋하게 커피 한잔 옆에 두고 파스타를 먹으니 냉파로 런 한 끼를 차려 낸  자신이 마음에 든다. 


 작은 집에는 아침에서 점심으로 넘어가는 때부터 테이블 왼쪽으로 난 창으로 해가 들어온다. 해가 길게 들어와 테이블에 해 자국이 나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따듯한 커피가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그 길을 따라 행복하다는 감정이 함께 다. 눈이 살짝 부셔도 블라인드를 치지 않는다. 얼마 전 기미를 발견했으나 개의치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다이어리에 써둔 편하게 살자는 한 줄을 본다.

 이 정도도 충분하지만 오랜만에 의욕이 꿈틀거린다. 앞에 두 글자 덧붙인다.

 2023, 더욱 편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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