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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08. 2022

상냥한 당신과 대화를 하면 생기는 일

 나와 같은 히키코모리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쪽을 택한다.

마트를 직접 가기보다는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어쩌다 마트를 직접 가서 물건을 찾을 때에도 직원에게 위치를 묻는 것 대신 두세 바퀴 돌아 찾아내는 쪽을 선택하며, 점원이 있어도 가능할 때는 키오스크를 택한다. 직접 만나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유선으로 나누는 대화도 힘들다. 가능하면 어플에서, 홈페이지에서 내가 혼자 읽고 눌러 일이 해결되는 것이 좋다. 열심히 찾았는데  꼭 영업점을 방문해야 한다고 하면 상심하는 식이다.


 가능하면 혼자 처리하는 것이 편한 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상냥한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면 내가 원치 않았던 무언가가 선택되었거나 가입되어 있는 일이 자꾸 생긴다. 그 앞에서 똑똑하고  딱 부러지게  단호한 말투로 차단하고 거절하리라 다짐을 해도 그들에게는 당할 수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닫고 나자 아예 피해버린다.


사용하고 있는 카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으니 상담사와 통화를 해야 한다는 알림 문자가 온다.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발급이 중단된 카드고 재발급을 해도 유효기간 연장이 되지 않는다 한다. 그런데 왜 꼭 상담사와 통화를 하라고 하는 걸까. 예외가 있나. 고객센터의 연결은 늘 힘들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브런치 글을 세 개를 읽고 나서야 겨우 연결된 상냥한 그분, 재발급이 안 되는 카드라 그 문자가 발송됐단다. 그러면서 링크를 보내줄 테니 거기에서 원하는 카드를 찾으라 한다. 네.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끊자마자 문자가 온다.


 이게 뭔가. 도시가스? 개인정보 동의? 나는 대부분 정보 서비스는 미수신으로 해놓는다. 통화하며 도시가스의'도'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이런 문자가 오나. 순간 기분이 안 좋지만 다시 전화해서 정정해달라 요청할 에너지가 없다. 


그리고 다음날  하필 다른 통화를 하는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OO카드에서 도시가스 자동납부 안내 전화를 드렸다며 다른 상냥한 분이 조금의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하신다,  "바빠서 죄송합니다"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화가 난다. 재발급 안된댔는데 뭘 기대하고 전화를 했을까. 평소에 잘 받지도 않는 대표번호를 확인도 안 하고 받았을까. 그냥 안 받으면 나았을 텐데 이야기하고 있는데 끊고 나면 기분이 안 좋다. 상대의 기분은 몇 배는 나쁘겠지.


  S의 친정엄마에게 연회비 2만 5천 원이 결제됐다는 문자가 온다. 무슨 카드 연회비를 이렇게나 많이 내냐니 은행 입출금 카드 유효기간이 끝나  갱신해달라 했더니 이 신용카드를 만들어줬다는 게다. 혜택이 많아서 한두 번만 써도 연회비보다 훨씬 이득이라 했던 그 카드는, S가 검색해보니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와 에버랜드 등의 놀이공원에서 할인을 받는 카드였단다. 70대의 S의 친정엄마가 스타벅스에 가서 한 번에 만원 이상씩 결제할 일이 그렇게 자주 있어 보였을까?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본인 50프로 할인을 받아 그녀가 탈 수 있는 게 있기는 한 걸까. S는 당장 신용카드를 해지하고 S의 엄마에게 은행에서 '입출금 카드'만 발급해달라 하고 "다른 말은 아예 듣지 말라"라고 했단다. 그리고 무료로 입출금 카드 갱신을 받아오신 S의 엄마는 왜 이게 되는데 그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그렇게 이야기한 걸까 한숨을 쉬신다. 다른 사람과의 대면에 앞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야 하는 세상을 맞닥뜨린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매사 똑 부러지는 E는 전시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매장에 직접 가전제품을 사러 갔다. 결제를 하려는데 조금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친절한 직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도 모르게 10년 동안 납입하는 상조 서비스에 가입을 했단다. 뭐가 홀린 것처럼 그랬다며 며칠 뒤에 취소를 하고 와서는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한다.


 카드 재발급이 안된다는 말에 알았다고 했는데 안내 전화에 수신동의를 했다고 하고, 입출금 카드 갱신을 요청하면 연회비까지 있는 생뚱맞은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고, 핸드폰을 사러 간 건데 한 달에 몇십만 원을 써야 하는 신용카드를 만들하고, 당장 몇 개월 후에 써야 할 돈이라고 말을 했는데도 자꾸 보험이 엮인 장기의 상품을 권한다. 명히 해지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더 비싼 이걸, 이걸 하면서 새롭게 약정이 시작되고 돈은 추가된다. 쉼표 하나 없이 술술 나오는 말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그냥 네 한마디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모든 것을 동의한 게 되는 세상.


 화면이 아닌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좀 더 나에게 이로운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치 않았던, 상냥한 그분이 원하는 결과로 빠지는 현실.

 히키코모리처럼 혼자서 화면을 들여다보며 찬찬히 읽어보고 필요한 것만 체크하는 것을 택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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