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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pr 19. 2024

말만 하니까 너무 쉽다

 이사 직후 치워도 치워도 치워지지 않는 짐더미와 며칠째 씨름하던 M이 전화를 걸어온다.

 해야 되는데 너무너무 하기 싫다며 "너는 하기 싫으면 어떻게 해?"라고 묻는 질문에 훅 나간 나의 대답은 "나는 하기 싫으면 그냥 먼저 해."였다.


 성격 좋은 M은 깔깔깔 웃으며 정답이라며 얼른 끊고 마저 해야겠다 말했지만 막상 뇌를 거치지 않은 듯 문장을 내뱉은 나는 뭐 이리 재수 없는 답이 다 있나 했다. 우습게도 그렇게 쉽게 말한 나 자신은 그날 요가도 빠지고 저녁으로 김밥을 싸 먹고서는 소파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딴짓을 하며 미루고 미루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설거지를 끝냈다.

  하기 싫으면 빨리 하고 말자고 결심은 하고, 또 그걸 해내는 때도 있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또 얼마나 많은가. 할 거 먼저 하고 쉬라고 잔소리를 해대면서 막상 그렇지 못한 순간은 셀 수 조차 없을 테다. 그러면서 마치 나는 늘 그렇게 할거 먼저 하는 사람인 거 마냥 조언질을 해댄 자신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pixabay

 그날 눈길이 미끄럽다는 핑계로 빠진 요가는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스스로에게조차 얄팍한 핑계로 지금은 아예 쉬고 있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요가 선생님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고유의 에너지 가득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던 분. 원래 엄청나게 뻣뻣했고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요가를 시작해서 강사까지 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타고난 유연성이 아니라 부한 노력으로 지금의 그 자세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승모근과 팔다리를 비롯한 온몸의 근육들로 알려주었다.


 가만 보면 요가 수업에서 가장 많은 운동량을 채우는 사람은 요가 선생님. 프로그램화된 동작이 아니라 그날그날 본인 몸이 쑤시는 곳을 풀어주는 동작들로 수업을 한다는 말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정석의 자세 그대로 그 많은 동작들을 계속해서 직접 해 보였다. 스트레칭 정도만 하면 좋겠다는 게으른 나의 바람과는 달리 말은 요가지만 근력 운동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팔 하나로 온몸의 무게를 버텨 내는 동작을 하며 한껏 솟아 오른 그녀의 근육을 보며 나는 매번 엎드리기 일쑤였으니 아마 1/3의 에너지도 쓰지 않았을 게다. 곧잘 따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마도 에너지 사용량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역시 제일 높은 사람은 요가 선생님일 게다.

@pixabay

 어느 날 손목을 다쳤다는 그녀는 평소와 달리 동작만 설명해 주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다른 회원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었는데 그때 그녀 입에서 터져 나온 감탄의 문장.

"말만 하니까 너무 쉽다! "

힘겹게 팔다리를 구기고 있던 나는 진심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웃음이 터졌지만, 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문장이 있을까.

@pixabay

 말만 하는 건 너무 쉽다.

 스스로는 실천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에게 마치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처럼 조언을 퍼붓기는 얼마나 쉬운가.

 과거의 자신의 경험은 실제보다 드라마틱하고 거대하게 기억된다. 당시 내가 얼마나 고생했던가를 한껏 부풀려 지금 현재 고통에 직면해 있는 이에게 떠들어 댄다. 여기에 더해 가상공간에 넘쳐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정보들을 통해 본인이 경험하지 않았던 것조차 이야기해 댄다. 

 심지어 제대로 연구하고 공부하지도 않은 것조차 유튜브 몇 개 대충 보고 흘려 들어 조합한다. 사실과 괴리가 큰 이 정보들을 마치 진리인 양 딱히 요청하지도 않은 남에게 일러주기까지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오류가 있을 거라는 가능성은 진작에 일축한다. 이미 그 말을 반복해 듣고 있는 스스로의 뇌마저 속는다.

 본인이 모든 것을 이미 알았고 내가 아는 점보다도 작은 이것이 전체의 진리라고 믿는 지경에 이르고 이렇게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다른 이에게 이제 전파를 하는 거다.

@pixabay

 어설프게 알수록 확신은 견고하다.

 나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것들도 남들이 할 때는 제대로 하라고 말하기 쉽다. 나는 하지 않아도, 심지어 나는 하지 못해도 남들 틀린 동작은 눈에 잘 들어온다. 바로 그 시점에서 그 동작을 지적하고 싶다면 내가 정석에 가까운 동작을 지금 현재 실시간으로 하며 나를 보고 따라 하라고 할 수 있는지 따져보자.


 그렇지 않다면, 침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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