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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r 09. 2023

그거 못 한다고 사는데 지장 없다

뭘 더 얼마나 잘할라고

 사람 몸으로 저 동작이 가능한 것인가.


 강사는 숙련자니까 그렇다 치자. 어찌하여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저걸 비슷하게 따라  수 있는가.

 

 양다리를 최대한 벌리라고 할 때부터 이미 차이가 났다. 비슷비슷한 선에 머문 다른 이들의 머리 높이와 달리 나 혼자 저 위에 있다. 거기에서 팔을 쫙 펴기만 해도 균형 잡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팔을 다리 안쪽으로 말아 넣으란다. '응? 어떻게 하라고?' 어리바리한 찰나 사람들의 몸은 낮고 둥그렇게 말리고 있고 나 혼자 우뚝 서 있다.


 변형된 자세라며 몸을 숙였다 세웠다 하라는데 숙이나 세우나 딱히 높이 차이가 나지 않는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의 몸은 납작했다 길어졌다 한다. 납작해야 할 때 나 혼자 높이 서 있는데 저 앞에서 나와 비슷한 높이의 사람을 발견한다. 나 혼자 동지의식을 느끼며 안도감이 들었으나 아차, 저분은 박자를 잘 못 맞추어 몸을 세운 거였다.


  이런 순간들이 비일비재했다.

  열심히 수업도 듣고 숙제도 해 오는데 성적이 안 오르는 학생을 보면 ,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난감한 그 감정을, 아마 저 선생님은 나를 보며 느낄 테다.

 

  없는 시간을 쥐어짜고 가족의 시간표를 이리저리 짜 맞춰 겨우 요가 시간을 뺐다. 심지어 주 2회에서 주 3회로 늘렸다.

  퇴근하는 순간 나의 에너지 잔량은 0에 가까이 가 있다. 내가 지금 숨은 쉬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순간들을 보내고 나온다. 저녁을 해 먹고 치우는 것 까지가 최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요가를 다니고 있다. 아이가 아팠던 날과 설 연휴 전날 단 이틀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다.


 아침 기온이 우리 집 냉장고의 냉동실 온도와 같은 영하 18도가 무슨 말이냐며 출근하기 싫다고 난리 난리를 쳤던 그날에도 나는 그 추위를 뚫고 요가를 갔다. 집 안에 들어서마자 의자에 털썩 앉아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다 했던 날에도, 오늘은 저녁 사 먹고 일찍 자자고 꼬드기는 나 자신과의 힘겨운 전투를 벌인 날에도 기어이 갔다.


 이런 갸륵한 정성에도 그러나 나의 몸은 아직도 여전히 뻣뻣하기 그지없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내 발 끝은 여전히 너무나 먼 곳에 있으며 내 팔과 어깨는 나의 체중을 감당기 버겁고 한쪽 발만 살짝 바닥에서 떼는 그 순간 몸의 균형은 무너진다.


 그렇다고 나도 저 자세를 하고 말리라 하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시도하냐면 그건 또 아니다. 꼭 그렇게 의지를 불태운 날은 문제가 생겼다. 발에 쥐가 나고 어깨에 담이 걸렸으며 허리가 결렸다. 그냥 내게는 저 정도까지가 가능하겠다 싶은 절충된 동작을 스스로 찾아 혼자 다른 자세를 하곤 한다.

 그날의 자세 역시 마스크 안에서 입이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두 팔로 내 몸을 겨우 겨우 지탱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한 팔을 떼고 살짝 디뎌 놓은 무릎까지 들라고 한다. 여기서 무릎을 들 수 있는 것일까? 힘을 주어 보지만 역시나 요가매트에 찰싹 붙어 있는 내 무릎은 미동도 없다. 팔을 떼어 볼까 하지만 이미 내 몸은 흔들리는 상태. 다른 사람들은 곧잘 따라 하고 있다. 아. 신기하기도 하지. 어떻게 저게 될까. 그런데 거기서 더 발전을 한다. 무릎을 떼더니 다리를 뒤로 올리고, 팔은 앞으로 쭉 뻗는다. 팔다리가 후들거린 나는 그냥 매트에 엉덩이를 대고 앉고 말았다.


 "안되시는 분은 무리하지 마세요. 이 자세 못한다고 사는 데 지장 없어요."

  강사의 말에 갑자기 눈이 뜨끈해진다. 아 이놈의 갱년기. 날뛰는 호르몬 때문에 자꾸 이렇게 감정이 복받친다.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저 동작 못한다고 사는데 손톱 끝만큼의 지장도 없다. 요가 매트 밖에서, 세상을 살며 내가 그 동작을 할 일이 있겠는가. 아니, 하면 안 된다. 했다가는 당장 유튜브에 올라갈 수도 있다.


해내고자 기를 쓰고 덤비는 수많은 것들 중, 하지 못했을 때 사는데 지장이 생기는 것이 몇 개나 있을까.

항상 위만 바라보고 더 높은 곳에 있지 못한 나를 보며 마음 한 구석에 돌덩이를 들여놨다 또 애를 써서 내놨다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목 아프게 위 그만 쳐다보고 돌덩이 안 들여놓으면 되는 걸 되는데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브런치 시작 1년


 어제는 브런치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초지일관 브런치 속 그 많은 숫자에 연연하고 있으며 남들이 만난다는 브런치의 그 '기회'라는 것이 오지 않음에 쓰잘데기 없이 슬퍼지던 때도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숫자, 발행글수에만 집중하자 한 뒤로는 이 바쁜 와중에 글까지 쓰는데 뭘 더 바라며 뻗대 있다.

 참으로 쓸 말이 없다 한 날에도 기를 쓰고 무언가를 적고  생각을 다듬지 못했더라도 글을 쓰며 정리하고, 좀 부실해 보이더라도 일단 발행을 누른다.


 회사 다니고 아이 키우고 살림까지 하면 그걸로 됐지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나.

 그 와중에 추위와 귀찮음을 견뎌 내고 요가도 다니고, 심지어 이렇게 따박따박 글까지 쓰고 있는데.

 뭘 더 얼마나 잘할라고.



#브런치 1주년



이미지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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