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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울 Sep 21. 2022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 있다더니, 호더였던 거냐

 왜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느냐며 울부짖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이 살고자 하면서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집을 20평을 줄여와도 건재한 이놈의 물욕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있으려고 하지만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다. 내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면 본래 용도와 무관하게 내게는 다 필요한 거다. 몸을 편하게 해 주어 나 자신의 에너지 보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그래도 핑계를 대기 쉬운데 오로지 마음의 안정과 기쁨을 위해 이 작은 집까지 기어이 가지고 온 것들이 무더기로 보일 때는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마음의 평화도 중요하다고 소심하게 중얼거리며 합리화를 하고 있다.


여생을 고시에 매달려도 다 쓰지 못할 나의 필기구들. 


 안다. 많다. 정말 많다.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 있다더니 필기구 호더였던 것인가.

 펜 하나만 남겼다는 미니멀리스트도 있던데 나는 말하기 부끄럽게도 여기 꽂힌 것 말고도 깎지 않은 연필이 더, 그것도 많이 더 있다. 


 연필깎이가 있는데 두 세 자루면 되지 않냐 물으신다면 연필심이 다르고 우겨본다. B, HB, H만의 차이가 아니다. 흑연의 삐걱거림이 다르다. 어떤 날은 종이 위에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부드럽게 그어지는 연필이 필요하지만 또 어느 날에는 뻑뻑하게 나가 한 자 한 자 세심하게 고민하고 쓸 연필이 필요하다.


 펜은 색깔별로 하나면 충분하지 않냐면 그것도 아니고 주장한다. 같은 색이라도 이펜과 저펜의 색이 다르고 두께가 다르. 같은 검정이라도 펜마다 미묘한 차이가 난다. 필기감이 다르고. 펜을 쥐었을 때 느낌이 다르다.  


 샤프까지 많은 건 너무하지 않냐 하지만, 샤프만큼 필기감 차이가 극명한 것이 또 있는가. 필기구 마니아들이 말하는 '그립감'시작도 말자. 샤프마다 어쩌면 이렇게 다를.  같은 샤프심을 끼워도 글씨를 쓰면 하나하나 다르다. 0.5mm부터 2mm까지 종류대로 구비해놓고 그때그때 골라 쓰는 맛이 있다. 쥐었을 때 손안에 착 감기면서 어떤 말을 써도 글이 될 것 같은 샤프가 있다. 기껏 초등학생 수학 도형 문제 풀어주는데 이렇게도 반듯반듯하게 삼각형, 사각형이 그려지는 샤프는 또 따로 다.


 이 많은걸 다 샀냐면 그건 아니다. 느 순간 아이가 선물로 연필세트와 같은 필기구를 받아 온다. 어떨 때는 '얘가 어린이집에서 예쁘게 포장된 쓰레기를 받아왔네' 하면서 연필을 받아오면 왜 내가 더 기뻐하는가. 어느 집단에서나 소량의 비용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나눠주기 편한 것이 펜인 것도 이유다. 이상하게 다른 사은품은 잘 거절하면서 펜은 꼭 받아 온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하면서 부드럽게 써지는 판촉용 펜이 또 있 말이다. 물론, 산 것이 많다. 앙증맞고 귀여운 필기구가 당기는 날이 있었고 딱 떨어지는 단정한 펜이 사고 싶은 날이 있었다. 개수가 많아지고 나서는 어쩌다가 '아주 잘 써지는' 나름 고가의 펜과 샤프를 하나씩 샀다.


 작정하고 물건을 줄이자 한 후로는 거의 사지 않았다. 그러나 몹시 기분이 안 좋은 날, 정말 화가 나는 날, 남들은 옷을 사고 가방을 사고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 때 나는 샤프와 볼펜을 고르고 골라 딱 한 개만 샀다. 이것도 과거형인 건 지금은 그래도 정말 참고 참고 또 참기 때문이다. 몹시 참는다. 볼펜 끝에 귀여운 베이맥스가 붙어있던 그 볼펜은 도대체 책을 보러 서점에 가는 거냐, 그 볼펜을 보러 가는 거냐 할 만큼 서점에 갈 때마다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살까 말까 고민했다. 제주도에서 본 아주 북실북실하고 커다란 털북숭이 감귤이 붙어 있던 볼펜은 또 어떠했나. 옆에서 나를 끌고 갈 때까지 털을 만지작거렸다.

 올해 내가 산 필기구는 샤프 딱 한 자루다. 그날은 정말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해야겠다. 점심도 먹지 않고 서점에, 바로 문구류 코너로 갔다. 예쁘게 진열된 반듯하고 심플한 선의 샤프들을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늘은 나에게 샤프 한 자루 사줘야겠다!'결심을 하고 났더니 뭘 살지 너무나 진중하게 고르느라 식욕까지 가시게 했던 사건도 잊어버렸다. 샤프를 들고 오는데 얼마나 뿌듯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이렇게 참고 또 참으며 사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많은 건 다른 건 그렇게 잘도 버리면서 이상하게 필기구를 버리는 건 힘들어서다. 초등학교 때 쓰던 샤프도 한 자루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상하게 고장 나지도 않고 다 쓰지도 않은 것을 버리기 힘들다.

 공부를 할 때는 끝까지 가득 차 있던 잉크가 조금씩 줄어들다 완전히 다 써서 잉크의 기름이 종이에 묻을 때 내가 이만큼 공부를 했구나 하는 기쁨을 느꼈고, 새로 깎아서 뚜껑을 씌워 필통에 넣어줬던 아이의 연필들이 어느 순간 아주 짧아져 있을 때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다니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열심히 글씨를 썼을까 기특하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필기구는 꼭 다 써서 비우고 싶다. 이 문제집을 채점할 때 쓴 빨간 색연필이 이렇게나 조그마해져 버리면서 나도 모르게 궁둥이를 두드리면서 '아이고 내 새끼' 하게 되는 거다.


 글씨를 쓰고 난 내 손에 파란 얼룩이 잔뜩 묻어있다. 얼마 전에 잉크 볼이 빠질 것만 같이 끽끽거리며 써지던 펜을 들자 역시 이것이 원흉이다. 펜들을 몇 개 꺼내니 이미 밑부분에 파란 잉크가 도장처럼 찍혀있다. 이러면 펜을 쓸 때마다 손에 얼룩이 묻는다. 오랜만에 정리를 해야겠구먼. 필기구 정리는 절대 귀찮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그래, 요즘 너무 정리가 뜸했어하는 살짝 설레는 마음뿐이다.


 물티슈로 펜들을 다 닦고, 바닥에 흥건히 고인 파란 잉크도 닦는다. 잉크는 옆칸까지 침범했고 심지어  칸막이를 타고 올랐다. 볼펜 밑을 정성스럽게 닦아준다. 오래간만에 칸칸이 들어있는 필기구들을 꺼내 밑에 부러져있는 연필심과 샤프심, 지우개 가루를 닦아 낸다.  한꺼번에 다 꺼내면, 감당할 수 없게 많다. 섹션을 분리해서 꽂는 건 나뿐이다. 섞여 있는 것들은 또다시 자기 칸으로 넣어준다. 장렬히 전사한 펜의 심은 분리하고 펜대에는 아직 짧지 않은 연필을 꽂아 길게 만든다.

  마음이 복잡할 때 혼자 앉아하는 몽당연필 만들기.

 연필이 이렇게 많으면 좀 버리면 되는 것을 몽당연필은커녕 여전히 긴 연필에 일일이 다 쓴 볼펜대를 끼워서 아주 길쭉하게 만든다. 연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평안함을 위한 의식 같은 행동이다. 끝이 뭉툭한 연필을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끝은 늘 뾰족하게 깎아두고 대신 연필 뒤를 깎으며 평정심을 얻는다. 정성스레 보이지 않는 선을 맞춰 연필을 깎는다. 볼펜 대마다 굵기가 다르다. 아주 조금의 차이로 연필이 안 들어가거나 안에서 헛돌거나가 결정된다. 중간중간 체크해가면서 나무 덩어리가 한 번에 떨어져 안에  진회색 심이 앙상하게 드러나지 않게 한 겹 한 겹 천천히 깎는다. 마치 도를 닦 차분하고도 평온한 상태에 다다른다. 렇게 만들어 뒤가 무거워진 연필은 필기감이 좋다. 종이에 썼을 때 사각거리는 소리도 더 크게 난다. 뒤가 무거우니 나도 모르게 더 힘주어 또박또박 글씨를 쓰게 되어서 좋다.


 모든 기록을 구글 캘린더와 메모장에 한다. 아주 오랜 기간 쓰고 비우고 했던 일기장도 올해부터는 더 이상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필기구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틈틈이 연필, 샤프, 볼펜, 색연필, 사인펜을 섹션별로 나눈 제자리로 넣어 준다. 아주 사소한 기쁨이 필요할 때 잘 나오지 않는 펜을 솎아 내고 아진 연필과 색연필을 뾰족하게 한다. 연필 끝을 칼로 깎으며 아주 작은 행복을 느낀다.


 사람이 기쁨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때 하는 활동, 취미.

 필기구 욕심은 내게 이렇게도 소소하고 평안한 취미를 주었으니, 나에게 필요한 거, 역시나, 분명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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