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Nov 01. 2022

신데렐라의 계모도 아니고

 신데렐라의 계모놀러 나가면서 신데렐한테 집안일을 잔뜩 시켰다. 이 더러운 건 개의치 않으니 나는 다거나 그게 아니 몸이 힘들어청소를 서 쾌적함을 누리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자기는 놀고 무임금으로 일을 시켜서 이렇게 오랫동안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에게 욕을 먹는 거다.


 신데렐라의 계모도 아 외출하면서 꼭 그렇게 설거지와 빨래 건조를 시다.


 외출 한번 할라치면 몹시 분주하. 몸단장에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짧다. 머리를 말린 후 청소기를 돌려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만든다. 애벌 설거지를 해 식기세척기 안에 넣어둔다. 샤워하고 사용한 수건까지 모두 돌려 외출 직전에 딱 맞춰 끝난 빨래를 건조기 안에 넣어둔다.


 외출하면서 식기세척기와 건조기의 시작 버튼을 눌러놓고 나오면 그게 참 뿌듯하다. 성격 이상해 보인다만 나는 놀러 나가지만 너희들은 집에 남아 집안일을 마무리하여 내가 돌아왔을 때 흐뭇하게 해 주어라 하는 심보.  

 에 와 세척을 마치고 물기 하나 없이 반짝거리는 그릇들을 보면 보람차다. 특히 두 시간가량을 돌려야 하는 건조기가 내가 나간 사이 젖은 빨래를 고슬 만들어 놓은걸 보면 그래 니들이 고생 많이 했다 싶다.


 오히려 집안에 있을 때는 좀 어질러져있어도 이따 치우자 내버려 두면서 갈 때 유난이다. 문을 열었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 있는 사진 속 그대로의 깔끔한 집만나는 게 좋다. 겉옷을 벗기도 전에 뭐부터 치워야 되나 하는 정돈되지 않은 상태는 다. 1박 이상의 여행이라도 갈 때는 쓰레기봉투까지 싹 비우고 나간다. 어디를 갔다 와도 우리 집 문을 열었을 때 "아 역시 우리 집이 제일 쾌적하다"는 소리가 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자기 전에 집안을 정리해두고 자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침에 일어나 최선을 다해 멍 때려야 하루가 여유롭고 알차다. 상 직후 거실에 나와 흠칫하며 청소로 시작한다는 건 옳지 않다. 


 대학교 때 엠티는데 그 당시 그런 행사가 늘 그듯 모두 모여 마시고 먹고 놀다가 차례로 하나씩 잠을 러 갔다. 그때 끝까지 자리에 남았던 친구 밤새 쓰레기 더미에서 허우적거리는 꿈을 꿨는데 을 깨보니 전날 밤의 처참한 술자리 잔해 한가운데 있어서 깜짝 놀랐다. 꿈에서보다 더 지저분했을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이쿠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집안이 어지러웠던 날, 불현듯 그 생각이 났다.


 예전에는 체력이 바닥나고 녹초가 되어도 싹 정리하고 잤지만 지금은 무리하지는 않는다. 도저히 체력이 안 되겠다 싶을 때는 그냥 두고 잔다. 하지만 하루의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 그리고 그다음 날 정돈된 집안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의 끝과 시작이 더욱 평안한 것을 안다. 


 말을 착착 잘 듣는 신데렐라있는 것도 아니고 도와줄 요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외출하기 전 미뤄봤자 돌아온 내가 해야 하고, 오늘 저녁에 미뤄봤자 내일 아침의 내가 해야 한다.

 지금의 내가 쉬어야 할 상태면 그 역시 전혀 미안해하지 말고 미루면 된다.

 지금 여력이 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며 집에서는 최선을 다해 쉬고 싶을 나를 위해, 겁고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할 나를 위해 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된다. 스스로에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

 나를 위한 선물, 매일 가능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