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의 계모는 놀러 나가면서 신데렐라한테 집안일을 잔뜩 시켰다. 집이 더러운 건 개의치 않으니 나는 쉬겠다거나 그게 아니면 몸이 힘들어도 청소를 해서 쾌적함을 누리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자기는 놀고 무임금으로 일을 시켜서 이렇게 오랫동안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에게 욕을 먹는 거다.
신데렐라의 계모도 아니고외출하면서 꼭 그렇게 설거지와 빨래 건조를 시킨다.
외출 한번 할라치면 몹시 분주하다.몸단장에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짧다. 머리를 말린 후 청소기를 돌려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만든다. 애벌 설거지를 해 식기세척기 안에 넣어둔다. 샤워하고 사용한 수건까지 모두 돌려 외출 직전에 딱 맞춰 끝난 빨래를 건조기 안에 넣어둔다.
외출하면서 식기세척기와 건조기의 시작 버튼을 눌러놓고 나오면 그게 참 뿌듯하다. 성격 이상해 보인다만 나는 놀러 나가지만 너희들은 집에 남아 집안일을 마무리하여내가 돌아왔을 때흐뭇하게 해 주어라 하는 심보다.
집에 와 세척을 마치고 물기 하나 없이 반짝거리는 그릇들을 보면 보람차다.특히 두 시간가량을 돌려야 하는 건조기가 내가 나간 사이젖은 빨래를고슬고슬 만들어 놓은걸 보면 그래 니들이 고생 많이 했다싶다.
오히려 집안에 있을 때는 좀 어질러져있어도 이따 치우자며내버려 두면서나갈 때 유난이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 있는 사진 속 그대로의 깔끔한 집을 만나는 게 좋다.겉옷을 벗기도 전에 뭐부터 치워야 되나 하는 정돈되지 않은 상태는 싫다. 1박 이상의 여행이라도 갈 때는 쓰레기봉투까지 싹 비우고 나간다. 어디를 갔다 와도 우리 집 문을 열었을 때 "아 역시 우리 집이 제일 쾌적하다"는 소리가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자기 전에 집안을 정리해두고 자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침에 일어나 최선을 다해 멍 때려야 하루가 여유롭고 알차다. 기상 직후 거실에 나와 흠칫하며 청소로 시작한다는 건 옳지 않다.
대학교 때 엠티를 갔는데 그 당시 그런 행사가 늘 그랬듯 모두 모여 마시고 먹고 놀다가 차례로 하나씩 잠을 자러 갔다. 그때 끝까지 자리에 남았던한 친구는 밤새 쓰레기 더미에서 허우적거리는 꿈을 꿨는데 잠을 깨보니전날 밤의 처참한 술자리 잔해 한가운데있어서 깜짝 놀랐단다. 꿈에서보다 더 지저분했을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이쿠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집안이 어지러웠던 날, 불현듯 그 생각이 났다.
예전에는 체력이 바닥나고 녹초가 되어도싹 정리하고 잤지만 지금은 무리하지는 않는다. 도저히 체력이 안 되겠다 싶을 때는 그냥 두고 잔다. 하지만 하루의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 그리고 그다음 날 정돈된 집안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의 끝과 시작이 더욱 평안한 것을 안다.
말을 착착 잘 듣는 신데렐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도와줄 요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외출하기 전 미뤄봤자 돌아온 내가 해야 하고, 오늘 저녁에 미뤄봤자 내일 아침의 내가 해야 한다.
지금의 내가 쉬어야 할 상태면 그 역시 전혀 미안해하지 말고 미루면 된다.
지금여력이 있다면 밖에 나갔다 돌아오며 집에서는 최선을 다해 쉬고 싶을나를 위해,즐겁고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할 나를 위해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된다. 스스로에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