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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Oct 25. 2022

'내가 할게'는 이제 그만, 코팅 팬

 "너 참 그 소리 많이 해."

 집에 놀러 온 W. 역시 이 집 커피가 제일 맛있다며 마신 컵을 싱크대로 가져가더니 설거지를 시작하려고 한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놔둬, 내가 할게" 하는 나의 말에 돌아온 대답. 그러고 보니 나 정말 그 소리 많이 한다. "내가 할게."

 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도 잘한다. 회사 생각은 일단 저리 치워두자.


 성에 맞고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 생각했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상태 고생했다는 멘트를 겨우 날리고 몰래 숨어 마무리 작업을 며 '그냥 내가 하고 말자' 했다. 참으로 오랫동안 아주 부지런하게 '내가 할게'를 외쳤다. 그랬더니 이제 모든, 많이 양보해서 95% 이상의 집안일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런데 이렇게 초해 싹 다 내가 하면서 자꾸만 벅차다 싶은 선에 도달한다는 거다.  선의 높이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고 그 빈도는 잦아진다는 을 절감. 예전에는 딱히 힘들이지 않고 했던 것도 이제는 버겁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뇌를 비우는 맛에 정신건강에 좋다 했이제 몸을 움직이지 않고 널브러져 텔레비전을 봐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구름을 보 음악만 듣고 있어도 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르니 그 장점이 몹시 바래고 말았다. 그뿐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가족을 위해서도 이제 이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내가 할게'를 줄여보고자, 코팅 팬을 구입한다. 코팅 팬이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 몇 년 만인가. 무려 자발적인 구입이라니.

 

 냉동 볶음밥이 결정적 계기다.

 전국에 체인이 있는 음식점. 언제나 면이 당기지만, 일부러 밥을 먹으려고 햄치즈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자리에서 냉동 볶음밥 봉지를 뜯어 프라이팬에 붓는 장면을 목격게 된다. '어이쿠. 이걸 만원 가까이 주고 먹는 거구나. 역시 외식은 비싸다' 했거늘. 아니 이런. 볶음밥 위에 계란 프라이 하나 올려져 있는데 엄청 맛있다. 식당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검색 당장 배송시킨다.


 냉동 볶음밥이 처음은 아니지만 주로 '급박한' 시간에 먹는 지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는데 버터 조금 넣고 프라이팬에 볶아 먹으니 식점에서 먹었던 것보다도 더 맛있다. 여기 1인 2개의 계란 프라이 올리니 요만큼의 죄책감도 사라지고 급 단백질이 풍부한 한 끼 식사라고 믿게 된다.


 이 정도는 내가 없어도 해 먹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그러나 스텐 에 볶음밥과 계란 프라이를 해 먹으라는 것은 분명 무리다. 특히 핵심이 되어 줄 계란 프라이는 스텐 팬을 오래 사용하고 있는 나도 가끔 실패한다. 생각해보니 수명을 다한 마지막 코팅 팬을 비우고 집에 스텐 팬만 남게 된 후에는 다른 이가 큰 마음먹고 요리를 해준다고 시작했을 때에도 결국은 눌어붙은 팬을 처리하느라 고생했고 결국은 모든 요리는 스텐 팬을 쓸 수 있는 '내가 할게'가 되었다. 코팅 팬을 들이자.


  하나같이 은색 스텐으로 통일된 부엌 수납장에 예쁘장한 파란색 코팅 팬이 들어온다. 코팅 팬을 직접 고를 때만 해도 매일 스스로 계란 프라이를 해 먹을 것처럼 말하더니 아직까지 볶음밥도 내가, 계란 프라이도 내가 하고 있다. 

 그래도 꼭 필요할 때, 또 뭔가 해 먹어봐야겠다 싶은 의지가 생겼을 때 예열하고 식혀 주다가 결국 내가 마무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아도 되는 도구가 하나 생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쩐지 집안일이 덜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간이 가며 너지가 줄어드는 것에 맞추어할 집안일 자체를 어떻게든 줄이고자 했고 간단하고 편한 쉬운 방법을 찾아댔다.  모든 방법은 그러나 모두 내가 하는 것이 전제였다.  남이 해준 요리는 다 맛있다고 그렇게 외쳐대면서 왜 우리 집 시스템은 남이 요리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던가. 내가 한 것 같은 수준에 미치지 못해도, 안 한 것보다는 2만 배 이상 깨끗한 것을 왜 꼭 내가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던가. 깊이 반성해야겠다. 

 

 이제는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겠다.  아무도 우리 집에서 요리와 청소를 할 수 있도록 만들야겠다. 기대치는 한껏 낮추고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내가 할게'는 저 속으로 집어넣고 '어머나 어머나 고마워!'라고 마음껏 촐싹거리며 기뻐하고 고마워 하자.


코팅 팬을 보며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네가 해라, 집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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